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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Aug 18. 2015

[내가 사랑하는 출사지 #7]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콧노래 흥얼거리며 힐링하는 곳

이른 새벽 길을 나선 덕에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들고 길을 나선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산길이다. 크지 않은 트럭이 쉬엄쉬엄 지나갈 수 있을 정도. 개망초와 엉겅퀴가 이른 아침의 길손을 반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개망초도 잠에서 덜 깬 듯 꽃 잎을 반쯤 열어 놓은 채로 졸고 있다. 귀여운 녀석들...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동호회 출사 공지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검색을 해 보니 탐나는 곳이다. 호수공원에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자작나무 무리를 보면서도 많이 끌렸었는데 아예 숲 전체가 자작나무라니... 두 말 할 것 없이 댓글을 달고 출사에 따라 나섰다. 역시나 두 팀이 꾸려질 정도로 인기가 높은 스팟.


뿌연 하늘과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살짝 걱정이 된다. 하얀 자작나무 숲에서는 이왕이면 쨍하게 푸른 하늘이면 좀 더 좋은 배경이 될 텐데. 흐린 날 숲 속에서는 셔터 스피드를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물론 이런 날씨에 대비해서 레인커버와 삼각대도 챙겨 오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거추장스럽고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숲을 가로질러 가는 농부의 트럭을 얻어 탔다. 대학시절 무전 여행한다고 친구 녀석과 함께 히치 하이킹하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김광석의 노랫가락을 흥얼거려 보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곳, 그 길에 서 있네.

(김광석,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자작나무 숲에 들어선다. 살포시 흩뿌리는 안개비가 스며들어 촉촉하게 젖은 대기는 부드럽게 나를 어루만져 준다. 사방이 하얀  자작나무뿐이다. 나무들 사이로 수줍게 나 있는 오솔길을 거닐어 본다. 적당히 푹신하게 젖어 있는 흙길은 물기로 인해 더욱 짙은 색으로 가라앉아 있다. 그 위에 희게 빛나는 자작나무들이 뻗어 하늘로 솟아 올라 있다. 구글에서 보았던 사진들 보다도 훨씬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오솔길을 내려가면 제법 너른 마당이 나오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먼저 도착한 부지런한 사진가 일행이 간식을 하고 있는 옆에 우리도 챙겨온 김밥으로 아침을 때운다.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막걸리와 파전이 아쉽다. 커다란 카메라 들쳐 메고 사진 찍는다고 두리번 거리는 것 보다 통기타로 정태춘의 노래를 부르면서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공간이다.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당신의 부푼 가슴으로 불어오는

맑은 한줄기 산들 바람

(정태춘, 시인의 마을)

요기를 하고 나니 다행히 비가 그친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고 오솔길을 거닐어 본다. 사진은 한 장도 못 건지더라도 그냥 이 길을 걷는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상쾌하다. 시야를 가득 채운 자작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원근감도 사라져 버린다. 영화 스크린 속으로 내가 들어와 버린 듯한 느낌... 대나무 숲은 아니지만 검객들이 칼자루를 휘두르며 소리 없이 머리 위를 날아다닐 것만 같다. 가지가 잘라져 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옹이들이 눈동자와 입술로 바뀌며 살며시 말을 걸어 올 것 같기도 하다. 숲 저 안쪽에서는 '잠시 꺼 놓으셔도 좋습니다'하는 광고를 찍고 있을 듯도 하다.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듯한 나무그네도 타고, 자작나무로 만들어 놓은 인디언 움막도 기웃거리며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무엇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은 곳, 눈을 뜨고 있건 감고 있건 꼭 그만큼의 느낌이 스며 들어 오는 곳... 힐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주 적절하게 느낄 수 있는 곳.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곳.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P.S. 겨울에 가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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