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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란 무엇인가?

by 이문웅

분노는 누구나 겪는 감정 중 하나.

누구나 알고, 누구나 느끼지만
끝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


그건 단순한 폭발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가끔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독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날엔 세상을 바꾸는 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분노라는 감정이 정말 내게 필요한 걸까,
아니면 그저 내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무거운 짐


살다 보면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부당함을 당했을 때,
누군가 약한 사람을 짓밟는 모습을 봤을 때,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마주했을 때.
그럴 때 나는 안다.
분노는 선택이 아니라, 그냥 찾아오는 것

마치 불청객처럼 스며들고,
어떤 날은 속으로만 삭이고,
또 어떤 날은 견디다 못해 터져 나온다.

사람들은 보통 말한다.
분노는 참는 게 미덕이라고.
억울한 걸 참고,
속상한 걸 삼키고,
괜찮은 척 웃으며 살아가는 게 지혜라고.

하지만 나는 참지 않았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했고,
불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렇게 분노하며 살았고,
그래서 잃은 것도 많았다.
사람도, 기회도,
때로는 나 자신도.
그런데 그게 내 방식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결국, 나를 먼저 잃었을 테니까.


정치나 사회에 대해 분노하는 일도 많았다.
나는 독재를 겪으며 자랐다.

표현의 자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살던 시절,
진실이 숨겨지고 거짓이 당당하던 세상.
그때의 분노는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안다.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그 분노 덕분에,
우리는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무도 분노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조용히 고개 숙이고 살았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존엄 없이 대할 때도 나는 참을 수 없다.

혐오와 차별, 폭력과 착취,
그런 걸 보면 마음이 먼저 욱 한다.
그건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뒤집힌 얼굴이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믿기에,
나는 분노하는 거다.


스피노자는 분노를 두고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실망했을 때,
우리는 분노를 선택한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바뀌지 않는 세상 앞에서,
너무 작은 나 자신을 느낄 때,
분노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낀다.


전쟁도 그랬다.
전쟁은 인간의 실패다.
총칼이 아니어도,
이념과 욕망이 만들어낸 참혹한 결과를 볼 때마다

나는 또 분노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아이들이 울고,
도시가 무너지고,
그 모든 것이 반복될 때,
분노는 어쩔 수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이들의 어설픈 변명 속에서도
그 분노가 다시 자라는 걸 느낀다.

누군가는 법의 이름으로 법을 비웃고,
누군가는 약자의 얼굴을 빌려 약자를 짓밟는다.
거짓말이 진실을 가장하고,
탐욕이 정의를 대변하며,
한때의 신념이 권력의 무늬로 둔갑할 때,
분노는 몸을 낮춰 숨을 고르다,
결국 터진다.


나는 그걸 수도 없이 봐왔다.
반성 없는 권력,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
시민을 믿으라는 말 뒤에 숨겨진 거래와 거짓.
그런 풍경을 볼 때마다,
분노는 어쩔 수 없이 찾아온다.
어쩌면 그건,
사람이 아직 사람답게 남아 있다는
가장 서글프고 동시에
가장 희망적인 증거인지도 모른다.

분노는 몸으로도 느껴진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관이 조이는 느낌이 들고,
머리가 뜨거워진다.
억누르면 결국 내 몸이 상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터뜨리면
내 주변이 상처입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분노를 직면하는 연습을 한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분노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을 던져왔다.
어떤 이들은 분노를 인간의 약함으로 보았고,
어떤 이들은
그 분노마저 잘 다스릴 줄 아는 것이
인간의 힘이라 말했다.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분노 없는 세상은 위험하다는 것.
모두가 조용하고,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부당함 앞에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 세상.
그런 곳은 더 무섭다.


나는 아직도 분노한다.
그 분노는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분노가 나를 파괴하지 않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쪽으로 흘러가게
오늘도 조심스럽게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게 아마,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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