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후는 카이라와 함께 에이라의 중심부로 향했다. 별빛처럼 빛나는 강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물은 투명하게 반짝였지만, 그 빛은 어딘가 흐릿했다. 물속을 헤엄치는 생명체들은 어두운 구름 아래의 별들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이게 에이라의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지후는 강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카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멈췄다. “예전에는 이 강물이 더 맑았어. 그런데 지금은...”
그녀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물결 사이에서 푸른 빛이 피어올랐다. 물의 정령, 아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투명한 몸은 물방울처럼 빛났지만, 어딘가 어두운 얼룩이 섞여 있었다.
“강물이 이렇게 변한 건 우리가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야.” 아로의 목소리는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인간 세계의 오염이 이곳까지 퍼지고 있어. 이대로라면 에이라의 생명력도 사라질 거야.”
“나무들도 시들고 있어.” 부드럽고 단단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의 정령 릴리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녀의 가지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잎들은 바싹 마른 채 바람에 흔들렸다. “우리 나무들은 이제 더 이상 자라지 않아. 공기도, 땅도 병들고 있어.”
릴리의 말에 지후는 무거운 눈빛으로 강물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이 강을, 그리고 에이라를 되살릴 방법은 없는 거야?”
“방법은 있지.” 카이라가 대답했다. 그녀는 아로와 릴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지후를 마주했다. “너희 세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에이라와 인간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인간들이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이곳도 고통받을 수밖에 없어.”
지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표정은 복잡했다. “우리 세계에서...”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 민지가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그녀는 아로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가 방법을 찾아야지. 물이 오염되는 원인을 분석하면 해결책도 나올 거야. 정령들의 도움을 받으면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지아는 민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릴리 쪽으로 다가가 나무의 거친 줄기를 쓰다듬었다. “그것만으로는 안 돼. 이 세계를 살리려면, 정령들과 마음을 나눠야 해. 과학만으로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
형민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피식 웃었다. “둘 다 거창하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강물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강물의 어두운 빛을 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형민아, 네가 나서진 않아도 좋아. 하지만 너도 뭔가 느끼고 있잖아.” 지아가 형민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형민은 대답 대신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조금 내려간 듯했다.
“결국 우리에게 달린 거네.” 지후는 작게 속삭였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빛은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 “좋아.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보자.”
카이라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 결심이 너희 세계와 이곳 모두를 살리는 첫걸음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