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삐에로는 웃지 않았다

by 권성선

조명이 번쩍였다.

프레젠테이션 스크린 위로 정우가 만든 광고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새하얀 배경, 금빛 로고, 완벽한 미소를 짓는 모델.

그 옆에서 샴페인 잔을 든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역시 정우 CD님, 이래서 다들 인정하는 거죠.”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광고업계에서 ‘CD’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총괄하는 사람을 뜻했다.

정우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만 올린 그 표정이 입술 끝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화면 속 모델의 웃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너무 반짝여서 오히려 눈이 시린 웃음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잘나갔던 건 아니다.

정우는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포스터 한 장, 배너 한 장으로 시작했다.

밤을 새워 만든 시안이 고객의 손짓 한 번에 찢겨나가던 시절, 그는 늘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다음엔 내가 주도하는 그림을 그릴 거야!’

그 다짐은 현실이 됐다.

서른이 되기 전, 그는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올랐다.

각종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고, 업계 후배들은 그를 ‘감각의 신’이라 불렀다.

정우의 이름은 곧 ‘성공’의 다른 말처럼 쓰였다. 그러나 성공은 빛과 함께 그림자도 데려왔다.

매일이 전쟁이었다.

브리핑이 끝나면 곧장 회의, 회의가 끝나면 또 수정.

클라이언트의 한마디에 밤새 만든 콘셉트가 뒤집혔다.

광고는 예술이 아니라 소비였다.

아침에는 세련된 스튜디오에서 웃으며 아이디어를 풀어놓았지만, 밤에는 사무실 불빛 아래에서 멍하니 폰 화면만 바라보았다.

그의 삶은 화면 속 모델처럼 늘 웃어야 했고 늘 빛나야 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서 그는 점점 말라갔다.

정우는 늘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 있었다.

광고 촬영장의 셔터 소리, 모델의 웃음, 감독의 “컷!” 외침이 하루를 채웠다.

그 속에서 그는 늘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다.

정장 어깨에는 먼지 한 점 없었고, 손목의 시계는 빛을 발했다.

브랜드 미팅에서 기획안을 펼치며 미소 지으면, 클라이언트들은 어김없이 박수를 보냈다.

회식 자리에서 사람들은 그를 ‘센스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 불렀다.

하지만 화려한 장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소파에 몸을 던진 채 한숨만 길게 뱉었다.

거실 한쪽에 켜둔 조명마저 그를 비추기엔 너무 멀었다.

손에 잡히는 건 리모컨과 빈 컵뿐.

텔레비전 속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만, 그는 따라 웃을 힘이 없었다.

그날도 고급 시계 광고 촬영이 끝난 뒤였다.

정우는 쇼케이스 한쪽에서 반짝이는 시계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저건 정말 빛나는 걸까, 아니면 빛나는 척하는 걸까.

손목에 걸린 시계는 여전히 빛났지만, 그의 삶의 방향은 가리켜주지 않았다

정우는 쇼케이스를 떠나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촬영장의 번쩍이는 조명은 금세 사라지고, 거리는 빗물로 얼룩졌다.

정우는 한동안 가만히 서서 손목의 시계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속에선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정우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골목을 향했다.

네온사인이 깜빡이는 이면도로, 익숙한 천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빗방울을 맞은 투명 비닐 안쪽으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문을 젖히자 뜨끈한 공기와 매운 국물 냄새가 정우를 감쌌다.

라디오에서는 DJ가 조곤조곤 무언가를 읽어주고 있었다.

낡은 나무 의자, 벽에 걸린 달력, 구석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

세상 어디에도 조명이 필요 없는 공간이었다.

가장 안쪽 자리에 앉자, 고수가 물잔을 내려놓았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손놀림은 묘하게 부드러웠다.

“뭐 드릴까요?”

“소주 한 병이요. 김치찌개도 주세요.”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고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우는 촬영장의 번쩍이는 조명 대신

이 작은 천막 속에서라도 숨을 고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우는 잔을 채우며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광고 촬영장의 번쩍이던 조명, 억지로 지은 웃음, 손목의 시계.

빛나는 줄 알았던 것들이 집에 돌아오면 전부 꺼져 있었다.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그때, 구석 라디오에서 낡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정우는 젓가락을 멈추고, 술잔을 들어 한 모금 삼켰다.

“제가… 저 삐에로 같아요. 속은 울고 있는데, 겉은 계속 웃는… 감정 노동자 말이에요.”

고수가 국자를 내려놓고 잠시 그를 보았다.

“개그맨이랑 비슷하네요. 부모 초상나도 무대에선 사람들 웃겨야 하잖아요. 그래도 여기선 남 눈치 안 보고, 진짜 표정 한 번 지어보세요.”

정우는 고개를 숙였다.

무대처럼 번쩍이던 촬영장에서는 해본 적 없는 아무 의미도 꾸밈도 없는 표정을 지어보고 싶었다.

대화가 끝나자 천막 안에 잠깐 고요가 내려앉았다.

고수는 말없이 빈 그릇을 가져와 마른행주로 천천히 닦았다.

그릇 표면을 스치는 부드러운 천이 묵은 자국을 하나씩 지워냈다.

닦일 때마다 흰 빛이 조금씩 드러났다.

정우는 그 손길에서 자신도 모르게 꽁꽁 덮어둔 마음 한 귀퉁이가 열리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그릇이 아니라 자기 속을 조용히 닦아주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빗방울이 천막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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