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장례식장에 가는 길보다 화장로 앞에 서는 길이 더 익숙했다.
검은 정장 대신 흰 장갑을 끼고, 향 대신 국화꽃 목걸이를 준비했다.
그의 손길을 거쳐 간 건 몸짓이 작은 토끼, 허리가 굽은 노견, 그리고 오래 앓던 고양이였다.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직업이 된 지 벌써 5년째였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의 죽음이었다.
그 전에는 사람의 장례 일을 했다.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고, 관 속에 꽃을 놓았다.
눈을 감겨 주고 상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든 건 절차였다. 정해진 절차를 따라가면, 감정이 무너질 틈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믿음은 한 달 만에 깨졌다.
제일 가까웠던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그가 직접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맡았다.
친구의 몸에 묻은 핏자국을 닦고,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혔다.
관에 꽃을 놓고, 뚜껑을 덮는 순간, 숨을 삼켰다.
관 위에 떨어진 꽃잎이 숨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그날 밤, 그는 장례 일을 그만두었다.
그 후,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가까웠던 이들이 한 명씩 떠났고, 남은 관계들은 조금씩 삐걱거렸다.
서로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말 한마디에 균열이 났다.
사람은 말로 상처를 주고, 말로 관계를 끝낸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몇 달 뒤, 지인의 소개로 반려동물 장례 일을 시작했다.
사람 대신 동물을 보내는 일이었다.
작은 몸에 하얀 천을 덮고, 장난감과 간식을 곁에 놓으면, 남은 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말 대신 울음이 눈물 대신 침묵이 흐르는 자리였다.
그는 그 침묵이 덜 아팠다.
아무도 그에게 원망을 쏟아붓지 않았고, 감정을 증명하라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하루는 작고 반복적인 의식들로 채워졌다.
발을 마지막으로 다듬고, 털을 빗겨 주고, 목에 작은 리본을 달았다.
때론 낡은 목줄이 오래 물어뜯은 인형이 함께 들어왔다.
그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
“이 친구한테 꼭 필요했던 거잖아요.”
그러고는 화장로에 함께 넣어 주었다.
사람보다 동물이 더 편했다.
동물은 묻지 않았다.
지난 일이나 상처나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눈빛 하나, 몸짓 하나로 충분했다.
그러나 그 무언가조차 무거울 때가 있었다.
장례가 끝나고, 주인이 동물의 이름을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할 때 그는 항상 뒤돌아섰다.
그 순간을 오래 들여다보면 자신이 부서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은 하루에 세 번의 장례가 있었다.
마지막 장례를 마치자 밤이 깊어 있었다.
작은 몸을 안고 울던 소녀의 눈동자가 아직도 손바닥에 묻어 있는 듯했다.
손끝에는 꽃잎과 털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를 씻어내지 않은 채 그는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
골목 끝의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고수포차’
천막이 바람에 흔들리며, 안쪽의 불빛이 번졌다.
문을 열자 바깥 공기가 뒤로 밀려났다.
비와 함께 들어온 냄새가 잠깐 머물다 우동 냄새에 묻혔다.
천막 안은 작았다.
한쪽엔 비에 젖은 우비를 걸친 중년 부부가, 다른 한쪽엔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부부의 웃음소리, 휴대폰에서 새어 나오는 드라마 대사, 조리대에서 끓는 소리.
그 소리들이 한데 섞여 부드러운 배경음이 됐다.
그는 가장 안쪽 비닐 천막에 기대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등 뒤로 빗방울이 부딪히는 감각이 전해졌다.
투명 비닐 위에서 작은 방울들이 합쳐졌다 떨어졌다.
낮에 본 눈물 방울과 겹쳐 보였다.
“뭐 드릴까요?”
고수가 다가왔다. 어깨에는 앞치마 끈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고, 손끝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 병이요.”
짧게 대답했다.
잠시 후, 보글거리는 작은 냄비와 잔 그리고 병이 놓였다.
김이 올라와 얼굴을 감쌌다.
그는 잔을 들어 소주를 따르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목구멍이 뜨겁게 탔다.
두 번째 잔을 따르며 그는 창밖을 봤다.
비닐 밖의 골목은 희미했다.
간판 불빛이 비에 번져 물속처럼 일렁였다.
국물은 짜고 매웠다.
혀끝이 얼얼해지자 오늘 하루가 다시 떠올랐다.
작은 몸을 안고 울던 소녀의 어깨, 그 떨림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이 자리에서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때, 세척대 쪽에서 물소리가 났다.
따뜻한 물이 빈 그릇에 부어지고, 천이 표면을 부드럽게 훑었다.
고수의 움직임은 느리고 일정했다. 마치 서두르면 안 되는 일을 하듯.
그 물결이 그릇 안을 한 바퀴 돌 때마다 그의 머릿속에서 오늘의 장면들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사람보다… 동물이 더 편해요.”
그가 입을 열었다.
고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말 안 해도 되니까요.”
짧은 말이였지만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손님 한 팀이 계산을 하고 나가자 포차 안은 한결 조용해졌다.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또렷해졌다.
그는 잔을 채우고, 다시 비웠다.
밖에서는 누군가 지나가며 우산 끝으로 천막을 스쳤다. 작은 진동이 전해졌다.
고수가 그의 테이블에 다가와 빈 그릇을 치웠다.
“국물 더 드릴까요?”
“네, 조금만요.”
다시 올라오는 김 속에서 그는 손을 녹였다.
그 온기가 오래 남기를 바랐다.
그는 눈을 감았다.
고수의 발걸음 소리, 조리대에서 기름이 튀는 소리, 비닐 천막을 때리는 빗방울, 그리고 그릇을 훑는 물소리.
그 모든 게 한 곡처럼 들렸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그는 비로소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조금은 사람이어도 괜찮다고 느꼈다.
그는 마지막 잔을 비우고 속으로 말했다.
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으로 사는 게 너무 어려웠다.
오늘만은 이 빗소리와 김 서린 천막 안에서 조금 덜 사람이어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