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유튜버를 꿈꾸는 배달 기사

by 권성선

11화. 유튜버를 꿈꾸는 배달 기사

마흔 다섯, 이름은 진수.

원래는 방송국 카메라 기사였다. 화려한 스튜디오 조명 아래에서 렌즈 너머의 세계를 기록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붙잡고 버티는 팔에서는 늘 땀이 흘렀지만, 화면 속 배우와 가수, 아나운서의 웃음이 그의 자부심이었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뷰파인더 속 배우의 표정이 살아날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카메라 너머의 열정을 봐주지 않았다. 계약직 카메라맨은 언제든 잘릴 수 있었고, 그의 이름도 명단에 포함됐다. 짐을 싸던 날, 동료들은 애써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진수는 알고 있었다. 내일이면 그들도 모른 척하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방송의 맛을 잊지 못했지만, 가족을 부양하려면 당장 수입이 필요했다. 그렇게 진수는 배달 앱을 켜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는 오토바이에 걸터앉아 화면을 응시했다.

이동 경로와 예상 시간을 재빨리 따져가며, 수십 개 떠오르는 콜 중 어디를 잡을지 계산해야 했다. 빠른 손놀림이 곧 수입이었다. 잠깐만 망설여도 좋은 콜은 순식간에 다른 기사가 가져가 버렸다. 손끝이 늦어 알짜 콜을 놓칠 때면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지도 위로 불꽃 모양 알림이 수십 개 떠올랐다. 출발지와 도착지, 예상 소요 시간, 배달비가 초 단위로 바뀌었다.

'성북구청 근처 분식집, 도착지는 한신아파트. 배달비 3천 원… 짧긴 한데 금액이 작다.'

망설이다가 결국 다른 기사에게 넘어갔다.

곧 또 알림이 떴다.

'동네 치킨집, 도착지까지 12분. 배달비 7천 원.'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화면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먼저 잡은 것이다.

"젠장…" 헬멧 속에서 욕이 새어 나왔다.

앱 화면의 콜들은 미끼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순간의 판단이 곧 돈이었다. 오토바이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이미 경주마처럼 뛰고 있었다.

드디어 한 건을 잡았다.

출발지는 집에서 5분 거리의 치킨집, 도착지는 성북동 아파트 단지. 배달비 5천 원, 무난했다.

진수는 헬멧을 고쳐 쓰며 시동을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그는 혼잣말했다.

"이거 놓쳤으면 오늘은 완전 꽝이었지…"

치킨 봉지, 피자 상자, 햄버거 세트….

예전에는 방송국 스튜디오의 먼지 냄새와 조명 열기가 손끝에 배어들었지만, 이제는 음식 냄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비 오는 날 도로는 특히 위험했다.

타이어가 쉽게 미끄러졌고, 차들은 경적을 날렸다. 방송국에서는 무거운 카메라를 붙잡고 버텼지만, 지금은 젖은 도로 위에서 핸들을 부여잡아야 했다.

무엇보다 더 힘든 건 가족의 시선이었다.

아내는 그와 마주칠 때마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이 들어 무슨 유튜버야. 그냥 사고 안 나고 돈이나 벌어."

딸은 더 노골적이었다.

"아빠, 제발 학교 근처에선 오토바이 좀 타지 마. 친구들이 보면 어떡해."

"왜? 아빠가 창피해?"

"창피하지, 당연히. 배달도 모자라 유튜버? 나도 유튜브 하는데, 아빠 건 웃겨."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그는 웃는 척했다.

"그래도 아빠, 조회 수 몇 백은 나오거든?"

딸은 비웃듯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헬멧 위에는 작은 액션캠이 달려 있었다.

'서울 밤길 배달 브이로그.'

구독자 200명. 영상마다 조회 수는 고작 몇 십.

밤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면 진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편집 프로그램을 켜고 오늘 찍은 장면들을 이어 붙였다.

화면 속에는 빗방울에 번지는 네온사인, 젖은 거리를 가르는 오토바이 불빛, 그리고 손에서 피어오르던 음식 봉투의 하얀 김이 담겨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진수의 모습이 그 속에 있었다.

힘겨웠지만 분명 살아 있는 얼굴이었다.

댓글은 많지 않았다.

"기사님 안전운전하세요!"

"밤 풍경이 의외로 멋지네요."

그 짧은 댓글 몇 줄이 하루 종일 가족에게 들은 핀잔보다 더 큰 위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 카메라를 떠올렸다. 방송국 시절 쓰던 고급 장비.

"그거 하나만 있으면, 영상 퀄리티가 확 달라질 텐데…"

욕심이 생겼다. 돈을 모으려면 더 많이, 더 위험하게 달려야 했다.

그날 그는 무리했다.

비가 내리는 밤, 앱에 뜬 고액 배달 건을 수락했다.

오토바이는 젖은 도로 위를 달렸다. 신호등이 바뀌자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타이어가 밀렸다.

순간, 옆을 스친 차량이 경적을 울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토바이는 간신히 멈췄지만 손끝이 덜덜 떨렸다.

헬멧 안쪽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좋아요… 구독… 그게 뭐라고…"

목소리가 젖은 골목에 흩어졌다.

골목 끝에서 천막 불빛이 번졌다.

'고수포차.'

문을 젖히자 뜨끈한 공기와 매운 국물 냄새가 그를 감쌌다.

작은 포차 안에는 몇몇 손님들이 있었지만, 각자의 대화에 묻혀 있었다.

그는 구석 자리에 앉아 소주와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첫 잔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몸은 데워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싸늘했다.

잠시 후, 고수가 다가와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얼굴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진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오늘 좀… 무리했거든요. 사고 날 뻔했어요."

"위험했겠네요."

"네. 사실… 이게 다 카메라 욕심 때문이에요. 방송국 나가고 나서, 다시는 못 잡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렌즈 뒤에 서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배달하면서 찍는 거예요. 유튜브에 올리면서 혼자 위로받고요."

고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행주로 그릇을 천천히 닦았다.

그릇 표면을 스치는 천이 묵은 자국을 하나씩 지워냈다.

"숫자가 전부는 아니에요."

"숫자요?"

"좋아요, 구독, 별점… 다 숫자잖아요. 근데 그 숫자가 밥을 먹여 주지는 않아요."

"맞아요. 근데, 가족도, 딸도 다 나를 창피해하는데… 그 숫자라도 붙잡고 싶더라고요. 그래야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게 증명되는 것 같아서."

고수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꼭 아셔야 해요."

"뭔데요?"

"좋아요보다 중요한 게 있더라고요. 오늘 하루 무사히 버티는 거. 살아남아야 내일 또 찍죠. 그래야 진짜 기록이 되는 거예요."

진수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빗소리가 천막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 살아남아야 찍을 수 있지…'

그는 잔을 채우고 조용히 비웠다.

딸이 등을 돌려도 오늘은 살아남아 카메라를 켤 수 있었다.

진수는 말없이 잔을 비웠다.

밖에서는 빗방울이 천막을 두드렸고, 포차 안에는 조용한 숨소리만 흘렀다.

고수는 세척대에서 막 씻어낸 그릇을 가져와 마른 행주로 닦았다.

표면을 부드럽게 훑을 때마다 흰빛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릇은 다시 누군가를 위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진수는 그 손길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밖의 빗소리는 여전히 이어졌지만, 작은 천막 안에는 오래된 빛이 하나 켜진 듯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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