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국가경제를 위한 사회 구조 논의의 출발점
전통적으로 정부는 두 가지 정책을 통해 경기변동의 진폭을 감소시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합니다. 이는 바로 재정정책(Fiscal Policy)와 통화정책(Monetary Policy)입니다. 재정정책은 정부지출 혹은 조세의 변화를 통해서, 통화정책은 통화량 및 이자율 조정을 통해 경기과 과열되었을 경우 긴축적인 정책을, 냉각되었을 경우 확장적인 정책을 펼칩니다. 오늘날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단연 통화정책입니다.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전 세계의 교양인들의 입에서는 제롬 파월(Jerome Powell, Chair of the Federal Reserve)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끊임없이 오르내립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전해지는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말 한 마디에 세계 경제가 출렁이는 것은 익숙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12대 연준 의장 폴 볼커(Paul Volcker), 13대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14대 연준 의장 벤 버냉키(Ben Bernanke) 시절에도 중앙은행 총재, 특히 미합중국의 중앙은행 총재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습니다.
이는 선진적인 자본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설정, 잇따른 연구 보고서와 이창용 총재의 과감한 발언은 사회에 큰 파장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로 낮추는 금리인하를 단행하였습니다. 이는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1년 8월 이후 38개월만입니다. 이는 미국 연준이 9월 FOMC 이후 기준 금리를 5.25~5.5%에서 0.5% 인하한 4.75~5.00%로 결정한 것에 따른 결과입니다. 이자율 평형 조건(Interest Parity Condition)에 따른다면, 다른 모든 것이 일정할 경우 국내 이자율과 해외 이자율의 격차가 커지면 환율이 상승하여 원화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이미 1달러당 1300원대 중후반을 유지하고 있는 환율을 더 끌어올려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금리 인하 조치보다 더 큰 논란거리가 된 것은 한국은행의 사회 구조에 대한 주장입니다. 최근 한국은행은 총재의 발언과 연구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돌봄 인력 최저임금 차등 적용, 농산물 수입 확대, 지역별 대입비례선발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해 적극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는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본 임무인 통화정책의 수행에만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비판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한국은행 총재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자세를 크게 환영하며, 앞으로 이런 사회 구조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한국은행이 단순한 통화정책의 시행을 넘어 적극적으로 국가경제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옹호합니다. 한국은행이 이러한 발언이 상당히 이례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의 수장이 국가 경제 전체에 이런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통화정책의 수장이 이러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닌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창용 총재의 발언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이창용 총재가 걸어온 길과 통화정책의 부작용을 이해한다면 이창용 총재의 우려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발언입니다. 이창용 총재는 이론과 실무 모두 능통한 거시경제학자로, 지금까지 거시경제학과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헌신해온 가장 뛰어난 한국의 거시경제학자 중 한 명입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으로서, 하버드에서 천재적인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 지도 하에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경제학자입니다. 로체스터 대학 조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거친 이창용 총재는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원론을 이준구 교수와 함께 저술한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총재가 단순히 정치적 야망을 위해 이런 작심발언을 했을 것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통화정책의 부작용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통화 정책은 재정 정책에 비해 내부 시차가 짧기에, 경기 안정화에 있어 재정 정책보다 선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제안정화정책은 두 가지의 시차를 가지고 있는데, 정책이 수립되어 집행되기까지 걸리는 내부 시차와 집행 이후 실제로 정책이 효과를 보는 데 걸리는 외부 시차가 그것입니다. 재정 정책은 원칙적으로 행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시행할 수 있으므로, 상당한 시간을 소모합니다. 반면 통화정책은 독립적인 통화정책기구인 중앙은행이 시행하므로 더 신속하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정 정책과 마찬가지로 통화 정책에는 큰 대가가 따릅니다.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경제학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선택을 했다면 그 대가가 뒤따르는 법입니다. 일반적인 통화 정책으로는 법정지급준비율 인하, 창구지도, 재할인율정책 그리고 공개시장조작(Open Market Operation)이 있습니다. 핵심은 이자율 혹은 통화량(M2, 광의의 통화 기준)을 조절하여 완전 고용, 물가 안정 등의 주요 거시경제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통화량과 이자율은 상호 영향을 끼치므로, 어느 쪽을 조절해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1세기 대부분의 중앙은행의 목표는 물가 안정, 즉 2%의 안정적인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긴축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떨어뜨립니다. 가장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화폐방정식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MV = PY인 화폐방정식은 통화량과 물가 사이의 관계를 단순하고 극명하게 보여줍니다(M: 통화량, V: 통화유통속도, P:물가, Y:국민소득). 통화유통속도 V와 국민소득 Y가 일정하다고 가정한다면, 물가 P는 통화량 M에 비례합니다. 즉, 통화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물가를 낮추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이러한 긴축적 통화정책은 기대인플레이션을 감소시킴으로써 물가를 낮추는 데도 기여합니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일종의 자기-실현적 효과를 가집니다. 사람들이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 모두 예상한다면 실제로 물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실제로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물가를 통제할 수 있다면 그 부작용은 무엇일까요? 그 부작용은 모든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금리 상승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 부담의 증대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시장 금리는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에 맞추어 움직입니다(이는 시중은행들이 기준금리 수준을 일종의 통화정책 당국의 정책 의지로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기준금리가 상승하면 일반적으로 대출 금리가 상승합니다. 이는 은행으로부터의 차입을 통해서 투자하고 기업활동을 영위하는 기업에, 소비 혹은 주택 구매를 목적으로 차입한 가계에게 큰 문제를 가져다줍니다. 그 중 대한민국에 있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가계부채입니다.
지나친 가계부채는 십 수년 전부터 국가경제의 큰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가계부채가 커진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COVID 19 사태로 인한 자영업자의 가계부채이고 다른 하나는 주택 구매로 인한 과도한 빚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비교적 덜 심각합니다. 그 고통이 경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개선 가능성에 대해서만 덜 문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 전국민 지원금을 나누어줄 것이 아니라 선별적인 지원을 통해 빚더미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에게 더욱 많은 지원을 해주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창용 총재가 꾸준하게 이야기를 한 것처럼, 진정한 문제는 주택 구매로 인해 발생한 가계부채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 샐러리맨, 사자 돌림의 전문직이라도 본인의 근로소득만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의 현실입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애국적인 일이라고 생각되기까지하는 자녀 양육을 감안한다면 근로소득으로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천문학적인 식비, 주거비, 교육비와 시민들에게 매겨지는 과도한 세금은 시민들을 선택의 여지 없이 투기에 뛰어들게 만듭니다. 노동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어디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주식투자와 채권투자는 일상 생활을 바쁘게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설령 주식투자를 하더라도 미국 주식시장에서 기회를 물색합니다. 코스피는 2600의 수준에서 현재 변동하고 있으며, 아마 당분간은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 것입니다. 국내 주식시장이 저평가되었다는 말이 나돌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코스피지수가 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실제로 국내 주식시장이 열악하고 저열하여, 상식적이고 합법적인 투자자는 그곳에서 어떠한 기회도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비한 금융제도,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주주환원에 대한 멸시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타인을 속이고 기꺼이 돈을 탈취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기 전문가들이 주식 투자자들을 국내 주식시장에서 쫓아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결국 돈을 벌고자 하는 시민을 부동산 투자로 이끕니다. 부를 증대시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합리적인 소비자는 주어진 선택지에서 가장 큰 부를 가져다주는 투자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초과 수요와 만성적인 공급 부족은 주택 가격을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려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큰 부를 가져다주고, 앞으로도 그러한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는 더욱 큰 초과수요 형태로 실현됨으로써 자기-실현적 기대의 악순환이 완성됩니다. 부동산 버블의 형성입니다. 부동산 버블은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실존하는 신기루 모래성과 같습니다. 모두가 모래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 성은 실존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그 성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솟구치는 가격을 떠받치는 사람들의 기대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합리적인 개인은 계속해서 그 기대에 올라타며 즐거운 부의 증대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전국의 모든 지역의 집값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며, 우려스러울 정도로 모두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이나 일부 지역에 크게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산가치가 계속해서 오르는 것에 연유한 투기적 수요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주택 수요의 전체를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잊고는 하는 사실이지만 집은 근본적으로 주거가 목적입니다. 실거주 목적에서 연유한 수요 역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집에 거주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하나의 삶을 새로 차린다는 것과 같습니다.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식주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근로소득을 벌어야 하니 직장에서 가깝기를 바랄 것입니다. 혹은 직장으로 쉽게 출퇴근할 수 있도록 지하철역 근처에 있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다칠 것을 대비해 근처에 병원이 있어야 합니다. 헬스장, 도서관 등 여가 시설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다면 좋은 학교가 근처에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대학교 입시 때가 다가올 때를 대비해 훌륭한 학원 강사가 포진한 학원가에 있기를 무엇보다도 가장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 시민이 기대할 수 있는 극히 희소한 것 중 하나는 미약하더라도 여전히 교육과 학벌이기 때문입니다.
이창용 총재가 입시에 관해 과감한 주장을 펼친 것은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전에 한국은행이 선제적 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하지 않아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 역시 경제신문에서 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하지 않는 한국은행을 질타하는 기고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창용 총재는 금리 인하를 단행할 시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가계부채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증하는 것을 제일 경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데 큰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입시 등 여타 요인으로부터 연유한 주택 수요가 계속해서 집값을 끌어올리고, 사람들은 상승하는 집값을 보며 부동산 투자에 매력을 느껴 차입량을 늘려 가계부채가 증가합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면 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사람들이 이자를 지급하고 실제 사용 가능한 소득이 크게 감소하여 내수 부진이라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결국 총수요가 하락하여 기업이 생산을 줄이고, 근로자를 해고하기 시작해 경기 침체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무시하자니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시행하는 데 큰 제약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창용 총재는 국가경제와 공공 이익을 생각하는 거시경제학자로서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경제학에서의 변수는 크게 외생변수와 내생변수로 나뉩니다. 외생 변수는 모형 밖에서 결정되어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변수이고, 내생 변수는 외생변수와 모수가 주어졌을 때 모형을 통해 값을 구할 수 있는 변수입니다. 내생 변수를 구할 때는 Ceteris Paribus라는 가정을 쓰는데, 이는 "다른 모든 것들이 일정할 때"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모형에서 사회의 근본적 구조 문제는 외생변수로서 작용합니다. 사회 구조 문제를 안은 채 통화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면, 국가경제는 틀림없이 같은 효과를 내더라도 더 큰 비용을 치러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실업, 인플레이션, 조세 증가, 사회 불안정 등 최악의 형태로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오늘날의 고도화된 시장 경제를 떠받치는 것은 사회 그 자체입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필연적으로 경제 시스템에 악영향을 끼치며, 효율성과 공평성 모두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은 제도학파인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 사이먼 존슨 교수 그리고 제임슨 로빈슨 교수에게 주어졌습니다. 어쩌면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모형 바깥의 사회 제도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지 모릅니다. 국가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한국은행의 용감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고, 직면한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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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 총재 “하반기 금리 인하 예단 어려워…아직 금리 인하 깜빡이 켠 상황 아니야”".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4121605001
1) "기준금리 결정 배경 및 향후 정책방향". 한국은행.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347/view.do?nttId=10087536&searchCnd=1&searchKwd=&depth2=201106&depth=201106&pageUnit=10&pageIndex=1&programType=newsData&menuNo=201106&oldMenuNo=201106
2)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11149436
3) https://www.bok.or.kr/portal/main/contents.do?menuNo=20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