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댕의 브리오슈와 파리 3 대학의 첫날
샤르댕(1699–1779)
프랑스 로코코 시대에 활동했지만, 화려함 대신 정물·가정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화가입니다. 절제된 색조와 부드러운 확산광, 치밀한 구도로 사물의 온기와 시민의 검소함을 시각화했습니다. 1728년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디드로가 살롱 평에서 반복된 찬사를 보냈으며, 말년에는 파스텔 초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대표작으로 〈가오리〉, 〈뷔페〉, 〈시장에서 돌아오는 여인〉, 〈브리오슈〉 등이 있으며, 세잔 등 후대 정물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의 박수근(1914–1965)과 자주 견줍니다. 화풍은 다르지만, 소박한 일상과 인간적 온기를 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정서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예요. 『백과전서』를 주도했죠(도알렘베르와 함께).
그는 살롱 전시를 꾸준히 비평했고, 사실적이고 절제된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샤르댕을 자주 칭찬했습니다.
대표작으로 「맹인 서한」, 「농아와 벙어리에 관한 서한」, 『라모의 조카』, 『달렘베르의 꿈』이 있고,
1749년 급진적인 글 때문에 뱅센느 요새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지식으로 세상을 밝히려 했던 사람, 그리고 샤르댕의 가치를 일찍 알아본 비평가랍니다.
창문을 열면, 파리의 바람이 한 조각 빵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찬유는 그 바람 쪽으로 작은 액자를 살짝 기울여 걸었다. 침대 머리맡, 흰 벽 위에 딱 맞춘 자리였다.
샤르댕, 《브리오슈》(1763). 마치 버터 냄새가 그림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찬유는 모서리를 한 번 더 눌러보았다. 팽팽하게 구운 2단짜리 둥근 빵, 그 위에 장식된 오렌지꽃 가지, 뚜껑 달린 설탕그릇인 슈크리에(sucrier)와 복숭아 두 알, 체리 리큐어와 앵두 세 알, 쿠키. 조용하지만 마음을 데우는 것들이다. 못이 벽을 단단히 잡아 주는 느낌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이곳은 파리 3 대학 기숙사 2인실. 창문 밖으로는 피크뿌스 거리(33 rue de Picpus)의 돌벽과 늦여름 햇살이 엇갈렸다. 낯선 방이지만 익숙한 이야기 하나쯤은 끼워 넣어야 사람이 산다.
입실을 마치고 1층 출입구에서 부모님을 배웅했다. 혜미와 남편 재형은 기숙사에서 몇 분 거리에 잡은 스튜디오 숙소에서 며칠 머물기로 했다.
“중학교 때 우리가 묵었던 그 숙소, 다시 알아봤는데 없어졌더라.” 재형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골목의 기억도 이사하나 봐.” 혜미가 웃었다.
“그래도 근처면 됐지. 너희 학교까지 걸어서 십 분이면 충분하대.” 재형이 덧붙였다.
“엄마, 정말 이 그림으로 괜찮아?”
“응. 바쁜 날에도 하루 한 번은, 빵이 부풀던 시간을 떠올리게 해 줄 거야.”
남편이 액자를 한번 훑어보고 빙긋 웃었다. “좋네. 벽시계보다 믿을 만해. 배고픔이 시간을 알려주니까.”
그 말이 끝나자, 셋은 동시에 같은 장면을 떠올렸다. 반죽이 볼을 타고 올라오던 초여름 저녁. 부엌 타이머의 똑딱이는 소리, 작은 손에 들린 고무주걱, 설탕이 흩어지는 가루의 눈. 찬유가 초등학생이던 그해, 동네 친구들과 먼 곳의 지인들에게 마들렌과 진저쿠키를 구워 보냈다. 상자 안에 편지를 꼭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도 도라지 가루 넣었어? 그럴 땐 시나몬 가루 더 넉넉히 넣어야 해. 그래야 도라지 향이 덜 나거든.” 철없는 고백 같은 문장들이 오히려 사람을 웃게 했다.
중학교 2학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저녁은 해야 할 공부로 바뀌었고, 반죽 대신 문제집이 책상 위를 차지했다. 쿠키틀은 서랍 속으로, 서랍은 점점 깊은 곳으로 밀려났다. 찬유가 말하곤 했다. 바쁜 것도 좋았지만 “그때 시간이 가끔 그리워”라고. 그러면 혜미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리움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언어니까. 재형이 덧붙였다. “그리움은 오래될수록 발효가 잘돼. 거품이 서서히 올라오거든.”
짐을 정리하고 방 한가운데 서서 찬유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그림 속 빵은 조금도 그들의 일상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제 온도를 지키는 사물처럼 따뜻한 빛을 천천히 품고 있었다. 유리병의 모양은 특별할 것 없지만 그득 달콤함을 채우고 있었고, 슈크리에 옆에는 쿠키 두어 개가 모양 좋게 놓였다. 복숭아의 솜털에서 여름이 살짝 증발하는 느낌, 테이블 가장자리의 조용한 그늘—샤르댕은 늘 그런 것을 잘 그렸다. 소란을 비켜 간 온기의 얼굴.
“여기서도 만들 수 있을까?”
“오븐만 있다면야. 그런데 지금은 영화과 입학 준비가 더 급하지 않니?”
“맞다. 서류 확인하고, 수업 계획 보고, 필요한 책도 구매해 놓고….”
재형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하나씩. 빵도, 영화도, 발효랑 편집은 순서가 있어.”
그날 오후, 부모는 스튜디오 숙소로 돌아왔다. 중학교 때 묵었던 작은 레지던스를 찾아가 보았지만, 간판도, 벨 패널도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 있던 작은 중정이 기억나는데.” 혜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라졌다는 건, 우리가 더 넓어질 기회가 생겼다는 거지.” 재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낮엔 꺄르푸(Carrefour)에 들러 브르기뇽 재료를 샀다. 팔러롱(paleron, 찜용 소고기·척/목살) 800g, 아르동 퓌메(lardons fumés) 150g, 양파 2개와 당근 2–3개, 마늘 2–3쪽, 양송이버섯 200g, 밀가루 한 스푼, 버터와 올리브오일, 소고기 스톡 300ml 내외, 그리고 부케 가르니(타임·월계수·로즈메리 묶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와인은 전통대로 부르고뉴를 고를까 하다가 가격 대비 맛이 안정적인 코트 뒤 론 AOP ‘E. Guigal’로 정했다. 병당 대략 한 자릿수 유로대로 살 수 있고, 브르기뇽에 쓰기에도 식탁에서 곁들이기에도 무난하다. 계산대에서 종이봉투에 담아 나올 때 재형이 말했다. “이 정도면 오늘 저녁은 충분해.”
스튜디오로 돌아와 냄비를 달구고 라르동을 먼저 볶아 기름을 빼고 소고기를 넓게 펼쳐 강불에 겉을 굽듯 잘 지졌다. 채소를 넣어 살짝 볶아 단맛을 깨우고 밀가루를 뿌려 코팅한 뒤 와인을 붓자, 자줏빛 향이 올라왔다. 부케 가르니와 스톡을 넣고 약불로 2–3시간 천천히. 마지막에 버섯을 더해 숨이 죽으면 접시에 담아 바게트와 함께 식탁에 올렸다.
“맛은 어떠세요, 셰프?” 재형이 포크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합격. 파리는 재료가 절반을 해.” 혜미가 말했다.
둘은 창턱에 접시를 올려놓고 낮은 빛을 함께 먹었다. 말끝이 잦아들자, 남편이 휴대전화로 찬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와 함께 먹던 브르기뇽이 생각났다. 음식은 엄마가. 사진 보냄.’ 사진 속에는 접시 두 개와 바게트, 그리고 창밖으로 비스듬히 누운 구름이 들어 있었다.
밤이 되자 기숙사 복도에서 여러 나라 말들이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새 룸메이트 샤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찬유는 창틀에 팔꿈치를 올리고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다 부모님에게 답장을 보냈다. 서울의 밤과 파리의 밤은 어쩐지 빛을 쓰는 문법이 다르다. 파리는 그림자가 먼저 자리를 깔고, 빛은 그 위에 얇게 덮개를 얹는 느낌이었다. 《브리오슈》의 배경처럼.
“아빠, 내일 수업 오리엔테이션 끝나면 같이 마레 가자. 엄마 디저트 좋아하잖아”
“보주광장 쪽으로?”
“응. 거기 네이비색으로 둘러싼 빵집 기억나지? Brigat.”
재형의 휴대폰을 곁눈질하던 혜미가 웃었다. “너 그때 초콜릿 쿠키를 한 봉지 산 다음, 벤치에서 다 먹었잖아.”
“아냐, 반 봉지였지.” 찬유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일은 디저트 사서 샤를이 오면 선물하고 싶어. 좋은 시작 같잖아?”
재형이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을 찍어 보냈다. “첫인사는 빵으로. 그건 만국 공통어야.”
다음 날 오전, 파리 3 대학의 안뜰은 새 학생들로 북적였다. 배낭, 서류, 긴장과 웃음. 안내문을 받아 들고 건물 사이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발이 도시의 리듬에 맞춰졌다. 오리엔테이션 내내 찬유는 휴대폰을 꺼내 필요한 내용을 적어 두거나 사진으로 남겼다. 교수 이름, 실습실 위치, 카메라 대여 규칙, 편집실 사용 예약—화면 속 글자들이 미래의 컷 분할처럼 보였다.
수업을 마치고 셋은 마레로 향했다. 골목은 비둘기 날갯짓처럼 부드럽게 휘어졌고 점심을 마친 사람들이 작은 잔을 들고 좁은 길에 서 있었다. 보주광장은 여전히 고요하고 장엄했다. 아케이드 사이로 바람이 천천히 통과했다. Brigat 앞에 섰을 때, 네이비색 테두리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유리 너머 다양한 디저트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Bonjour.” 문을 열며 인사를 건네니 카운터의 젊은 직원이 같은 말로 웃으며 받았다. 바게트 2개, 브리오슈 하나, 그리고 조그만 사브레 과자 몇 개와 레몬과 초코맛 마카롱 6알 더. 종이봉투는 가벼웠다. 온기가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재형이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건 내가 책임진다. 무게라는 것도 기쁨의 단위가 있을걸?”
광장 벤치에 앉아 셋은 브리오슈를 조금 떼어먹었다. 겉은 얇게 갈색, 속은 노란빛. 버터가 과하지 않게, 그러나 충분히.
“엄마, 이건 샤르댕 것보다 덜 단데?”
“그림은 혀 대신 눈으로 맛보는 빵이니까.”
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도 비슷하지. 소리는 귀로 듣지만 진짜 맛은 장면 사이에서 나와.”
저녁 무렵, 기숙사 정문 앞에서 부모와 아들은 잠깐 더 이야기를 나눴다.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해.” 혜미가 말했다.
“장 보는 건 걱정 마. 까르푸 루트는 우리가 먼저 개척했거든.” 재형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알겠어. 나도 곧 내 루트를 만들게.” 찬유가 웃었다.
찬유는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공용 주방으로 향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금발의 곱슬머리 청년이 고개를 내밀었다.
“Salut, je suis Charles.(안녕, 나는 샤를이야)”
“안녕, 샤를. 나는 찬유.”
서툰 프랑스어와 영국식 영어, 곧잘 섞이는 손짓. 인사의 맥락이 금방 따뜻해졌다. 찬유는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네 몫.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이래.”
샤를의 눈이 조금 커졌다. 고맙다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공용 주방의 작은 접시에 올리브오일을 붓고, 발사믹을 몇 방울 떨어뜨려 빵을 떼어 찍어 먹었다. 대화는 가볍게, 그러나 자연스레 깊어졌다. 서로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장면, 좋아하는 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각, 스튜디오 숙소 창가에서 혜미는 휴대전화 화면 속 액자 사진을 오래 바라보았다.
“우리가 보름 뒤 한국으로 돌아가도, 저기 있잖아.”
“응. 끼니처럼 볼게.”
재형이 낮게 덧붙였다. “우리도 여기서 보름 동안 잘 발효돼 보자. 파리식으로, 천천히.”
늦은 밤, 보주광장 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막 구운 빵의 냄새가 섞였다. 아이의 방, 벽에 걸린 작은 그림, 그리고 네이비색 빵집에서 산 바게트 한 봉지. 그 모든 것이 한 편의 짧은 영화처럼 이어졌다. 오프닝은 액자를 여는 손이고, 클로징은 바삭한 첫소리.
그 밤, 찬유는 침대에 누워 그림을 바라보았다. 빵의 곡선이 천천히 빛을 모았다. 그는 고요하게 되뇌었다. “액션.” 그리고 아주 작은, 그러나 확실한 내일이 방 안에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파리 3 대학(소르본 누벨)은 2002년 말에서 2003년까지 내가 어학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 영화이론 학과가 있다.
음악은 스텔라장(Stella Jang)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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