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 한 방울

김창열의 물방울 만나는 시간

by 김상래


김창열/ 물방울 SH87032/ 1987년/ 캔버스에 한지와 유화 물감/ 190x300cm/ 서울미술관 소장

눈 내리던 제주, 한 방울의 물빛을 만나다

도서관에서 진행한 「도슨트와 함께하는 미술관 여행 – 국내편」 강의에서는 여러 미술관을 소개했는데, 그 가운데 한 곳이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다.


몇 년 전, 아이와 제주 여행을 갔다가 폭설로 비행기가 뜨지 못해 예정에 없던 하루를 얻게 된 적이 있다. 사실 그 여행은 예술인 창작 지원금을 받아 ‘이번에는 제대로 한 번 써보자’ 마음먹고 떠난 길이었다. 그렇게 선물처럼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 망설이다가 우연히 발길을 돌린 곳이 바로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었다. 뜻밖의 방문이었지만, 그날 미술관에서 마주한 김창열의 삶과 그림은 그 지원금으로 쓰려던 글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을 만큼 오래, 깊게 내 안에 머물렀다.


그날 이야기를 도서관 강연에서 들려드렸더니, 여러 기관에서 “그때 말씀해주셨던 김창열미술관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그 뒤로 김창열미술관을 비롯해 국내 여러 미술관을 소개하는 ‘미술관 여행’ 강의를 꾸준히 진행하며, 다양한 작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함께 나누고 있다. 눈 내리던 제주에서의 작은 우회로가, 내 인생의 한 축을 이루는 중요한 강연의 길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셈이다.


김창열(1929–2021)은 캔버스 위에 맺힌 물방울로 널리 알려진 화가다. 그가 평생 반복해 그린 물방울은 살아온 시간의 흔적과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조용히 드러낸다. 서예의 필획처럼 정제된 붓질로 투명한 방울 하나를 완성하는 과정은 거의 수행에 가깝다. 그에게 물방울은 ‘흘러가는 시간이 잠시 응고된 형태’이자 ‘스스로를 비춰 보는 작은 거울’이었다. 김창열에게 회화는 물질의 덩어리가 아니라, 마음을 맑히는 한 방식이었다.


최근 용문도서관에서 진행한 미술 인문학 프로그램에서도 김창열의 물방울이 떠오르는 장면을 만났다. ‘나만의 페르소나 가면 만들기’ 시간, 한 어르신께서 흰 마스크를 받으시더니 가면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셨다. 한쪽은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흰 면으로 남기고, 다른 한쪽은 검은색으로 빈틈 없이 채워 넣으셨다. 그리고 어두운 면의 눈 아래에 눈물처럼 보이는 작은 반짝이 스티커를 하나 붙여 두셨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하고 조심스레 여쭈었다. 어르신은 잠시 가면을 바라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아오면서 여전히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고민이 많아요. 마음이 늘 이렇게 반으로 갈라져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검은쪽 눈 아래의 반짝이를 가리키며 덧붙이셨다.

“이건… 그 안에서 울고 있는 나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제주에서 보았던 김창열의 물방울을 떠올렸다. 화면 위에 매달려 있던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그 어르신의 눈물 스티커와 포개졌다.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르신이 평생 쌓아 온 걱정과 서러움이 내가 안고 있는 고민과 눈물과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물방울 같은 마음으로 자라온 시간들

돌아보면, 나 역시 늘 그런 물방울 같은 마음으로 살아왔다. 학교와 학원, 집만 오가던 십대의 나는 스무 살이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저절로 단단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이십 대의 나는 달랐다.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자주 헤맸다. 이 길이 맞는지, 저 선택이 옳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날이 많았지만,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또렷하지는 않아도 늘 어딘가를 향해, 나만의 속도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서른을 지나며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품고, 회사와 집을 오가며 살던 시간들은 하루하루가 분주했지만 나를 단단하게 키워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 무렵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였다고 지금도 자주 떠올리게 된다.

바닷가를 함께 걷던 연애의 날들, 따뜻한 햇살 아래서 나눴던 대화들, 나보다 한참 어린 신랑이 직장을 잡도록 곁에서 응원하며 함께 미래를 그리던 밤들. 퇴근 후에도 부족한 걸 채우겠다며 학원에 다니고, 결혼 석 달 만에 찾아온 아이 소식에 놀라움보다 감사가 먼저 올라왔던 순간까지.

쉽지 않은 출산 과정과 몇 차례의 유산을 겪고 나니, 아이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배움을 안겨준 시간으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아이 덕분에 웃고 울며 자라던 그 시간, 나는 매일이 선물 같다고 믿었다. 아이가 자랄수록 나 또한 함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 우리를 위하여

그렇다면 지금, 50대를 앞두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시몬스 침대처럼 흔들림 없는 삶’을 광고 문구처럼 꿈꾸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흔들린다. 도서관에서 만난 일흔 무렵의 어르신이 “아직도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갈피를 못 잡겠다”고 하셨듯, 아마 나도 그 나이가 되어서도 흔들리며 살 것이다.

다만 예전처럼 광활한 세상의 여러 갈림길 사이에서 방황하기보다는, 이제는 내가 세운 삶의 방향 안에서 그 안에 난 두 개의 오솔길 앞에서 오래 서성일 것 같다. 선택지는 예전보다 조금 좁아졌지만, 그만큼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책임 있게 한 길을 고르려 애쓰게 되겠지.

아마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크고 작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이 길이 맞았을까, 다른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흔들리며 사는 것, 어쩌면 그게 인간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김창열의 물방울 앞에 서면, 용문도서관에서 만난 그 어르신의 검은 눈물 스티커가 다시 떠오른다. 흔들리는 마음 깊은 곳, 아직 울고 있는 ‘내 안의 아이’가 그 물방울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캔버스 위의 물방울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빛의 떨림과 시간의 흐름, 마음의 파동이 함께 스며 있다. 그것이 김창열 회화의 역설이자, 우리의 삶이 품고 있는 진실이 아닐까.

흔들리되, 끝내 무너지지 않는 것. 흩어질 듯 흩어지지 않고 빛 한 줄기를 품고 서 있는 투명한 물방울처럼.

그 물방울을 들여다보는 일은, 여전히 자라고 있는 나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미술에세이 #살롱드까뮤 #마더로그 #김창열 #물방울그림 #한국현대미술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미술관여행 #도서관강의 #미술인문학 #도슨트강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빛을 머금은 한 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