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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은 왜 우리를 열여덟으로 되돌리는가

피에르 보나르/ Children in the Snow

by 김상래
피에르 보나르/ Children in the Snow/ 1905년/ Art Institute of Chicago


우리가 놓고 온 열여덟의 마음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나는 계절이 몇 번 바뀌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열여덟의 여름이 지나고, 스무 살이 되고, 선거권을 받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가 채워져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들을 책임지기 시작하는 마음에서 오는 거였다. 〈열여덟의 순간〉은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진실을, ‘더 글로리’가 선택한 강렬한 방식과는 또 다른 결로 담담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는 교훈적인 학원물처럼 누군가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준우와 수빈 같은 아이들이 18살의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그대로 흔들리는 순간을 비춘다. 오해에서 시작된 멀어짐, 질투가 만든 서툰 상처, 말 한마디에 뒤틀리는 관계, 그리고 가슴이 터질 듯 밀려오는 사랑. 그 모든 감정이 억지 없이 흘러오고, 그 안에 작은 온기까지 배어 있다.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한때 저 나이였다는 사실이 조용히 마음 한쪽을 건드린다.

드라마 <열 여덟의 순간>

지금 돌아보면 모두 작은 일들이었다. 준우와 멀어져 울던 수빈의 밤도, 사소한 오해에 마음을 닫아버린 친구의 표정도, 고백을 망설이며 서성이던 준우의 발걸음도.

그때는 그 모든 순간이 인생의 전부였다. 드라마는 그 시절의 감정을 과하게 미화하지도, 가볍게 흘려버리지도 않는다. 그저 “그랬지, 그때의 우리는 정말 그렇게 흔들렸지” 하고 조용히 끌어안는다.

드라마의 회차 제목들은 마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속 B면 노래처럼 마음을 잡아 끌었다. ‘이름 없는 아이’, ‘도망가고 싶은 순간’, ‘속상한 날엔 꼭 비가 내린다’…제목만 들어도, 새벽 버스 정류장을 떠돌던 준우의 차가운 숨결과 수빈이 엄마의 기대를 버티지 못해 조용히 무너지던 방 안의 공기, 그리고 교실 복도에서 아이들 사이로 스쳐 지나가던 말 못 할 긴장감까지 함께 떠오른다. 열여덟의 감정은 금세 사라지지 않는다.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느리게 스며들어 더 오래, 더 선명하게 남는다.

마휘영은 교실에서는 전교 1등, 믿을 만한 반장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완벽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서 늘 압박을 견뎌야 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의 마음속에서 뒤엉켰다. 그 감정은 결국 ‘완벽함’이라는 갑옷을 입게 했고, 그 무거움이 폭력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다.

드라마는 그를 옹호하지 않는다. 학폭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임을 분명히 한다. 다만 상처와 두려움 속에서 흔들리는 한 청소년의 얼굴도 함께 비춰, 마휘영이라는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남겨둔다. 열여덟의 세계에는 완벽한 아이가 없다. 모두가 흔들리고, 그래서 더 또렷하게 기억된다. 그 흔들림이 바로 ‘성장’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첫눈이 데려온 열여덟의 속도

열여덟의 속도는 시간을 느리게 번지는 빛처럼, 마음을 조금씩 깊어지게 한다. 그 느린 속도는 문득 어떤 날의 기억을 불러왔다. 재작년, 창밖에 첫눈이 흩날리던 날이었다. 하얀 눈송이가 고요하게 내려앉는 걸 바라보다 문득 드라마 속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느리게 가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것을 느낀다.”

그때 아이가 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엄마, 나가자. 실컷 눈 밟고 눈사람도 만들고 들어오자!”

책 홍보 일정과 마감이 잔뜩 쌓여 있었지만, 나는 결국 노트북을 살며시 덮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두꺼운 패딩을 껴입고 장갑을 챙겨,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갔다. 크리스마스 트리용 불빛이 반짝이는 나무 옆을 지나, 1층 트랙 앞에 다다르자 눈이 고요히 쌓여 있었다.

2024. 11. 28/ 우리들의 기록

6학년 아이는 마치 처음 세상을 보는 강아지처럼 들뜬 얼굴이었다. 눈 위에 누워 양팔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천사를 그리더니, 나뭇가지를 잡아당겨 머리 위로 눈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단지 옆 천으로 내려가, 발목과 무릎 절반까지 차오른 눈을 마음껏 밟아 보기도 하고, 그 위에 그대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마냥 신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덩이를 던지며 숨이 차오를 때까지 웃었다. 발끝은 이미 젖었고 볼은 얼어붙어 따끔했지만, 그 순간의 웃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곤 커다란 눈덩이 두 개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단풍잎으로 머리카락을 얹고, 나뭇가지로 눈과 웃는 입을 새겨 넣었다. 어딘가 어설픈 모습이었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우리의 하루를 가장 정확히 닮아 있었다.

올해도 첫눈이 내렸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을 향해 가는 아이와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우리는 그날만큼은 다른 때와 달리, 헬스장 뒷문을 나서자마자 단지 옆 천으로 이어지는 길로 걸음을 돌렸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이 펼쳐져 있었고, 우리는 마치 새 페이지를 여는 사람처럼, 첫 발자국을 조심스레 새겨 넣었다. 걷는 동안 눈발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발끝까지 폭신하게 쌓였고, 우리는 갈지자로 발걸음을 틀어 그 위에 우리 둘만의 길을 새겨 넣었다. 새하얀 바닥 위에 발자국이 차곡차곡 이어지고, 그 사이로 우리 둘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는 눈이 올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망설임 없이 하얀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등에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 텐데도, 그 순간만큼은 눈을 맞는 일이 익숙한 듯 표정이 한결 부드러웠다. 그 표정에는 어느새 단단해진 여유가 스며 있었고, 세상을 자기 속도로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가는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2025년 12월 4일의 기록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서둘러 무엇을 이루려 애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의 행복을 먼저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되는 일, 그 마음 속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한 내 행복을 조용히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을. 집에 돌아오자 아이는 금세 씻고 책을 펼쳐 들더니, 어느새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고르게 숨을 쉬며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순간이 훗날 어떤 날보다 따뜻한 기억이 되리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고 있었다.

보나르의 눈처럼 마음에 남은 하루

눈 내린 날의 기록을 쓰고 있자니, 그 장면은 자연스레 피에르 보나르의 〈눈 내리는 거리의 아이들〉(Children in the Snow, 1905)과 겹쳐진다. 오래전부터 좋아해 온 화가라서 그의 겨울 풍경은 이상할 만큼 내 일상과 쉽게 포개진다. 거리에는 회색빛 겨울 하늘 아래 눈이 두텁게 쌓여 있고, 담벼락과 나무들에도 눈이 포근하게 내려앉아 있다. 왼편 집들은 노란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져 따뜻한 기운을 내고, 앞쪽에서는 세 아이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며 눈 위에서 천진하게 움직이고 있다.

보나르의 그림은 언제나 부드러운 온기를 품고 있다. 그 따뜻함의 근원에는 한 사람, 그가 평생 사랑했던 마르트가 있었다. 보나르는 그녀를 매일같이 관찰했고, 수백 점에 이르는 그림 속에 반복해서 담아냈다. 목욕을 즐기던 그녀의 습관을 포착해 시리즈처럼 남겼고, 그녀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욕실을 새단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가 온천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둘은 여러 차례 온천 여행을 떠났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처럼 보나르의 일상은 마르트의 리듬에 맞춰 흘렀고, 그의 붓은 사랑하는 이를 부드럽게 감싸듯 세상을 기록했다. 보나르는 카메라를 즐겨 쓰던 화가였다. 어느 한 순간을 맑게 붙잡아둔 필름 한 컷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도 내 글 속에 한 컷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웃음이 번지던 순간, 눈 위에 남은 발자국,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이의 표정까지. 보나르의 그림이 겨울을 따뜻하게 기록하듯, 나의 하루도 조용하지만 또렷한 이미지로 마음 속에 박혀 있다. 어쩌면 그날 우리 모자가 눈 위에 남긴 발자국과 웃음도, 보나르의 화면 어딘가에 작은 조각처럼 스며들어 있을지 모른다.

시간은 늘 앞서 흘러가지만, 마음은 그 속도를 한참 뒤에서야 따라잡곤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가끔은 열여덟의 속도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속도로 아이와 함께 걷고, 웃고, 사소한 순간들을 조용히 쌓아 올린다. 좋은 날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마음의 창을 조금만 달리 열면, 평범한 하루도 서서히 빛을 품는다. 그렇게 모인 작은 빛들이 결국 우리가 꿈꾸던 삶의 결을 만들어준다.

올해 첫눈은, 새로운 계절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듯 내 마음 위에도 고요히 내려앉았다. 그 고요 속에서 하루가 아주 작게 빛나기 시작했다.


_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이가 자이언티의 '눈'을 틀어 달라고 했다. 우리 둘이 흥얼흥얼.


_아이가 잠들고 난 후, 나는 이지훈이 부른 '떠나가는 것들'을 무한반복해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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