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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Mar 27. 2022

연습 또 연습,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조지 휴즈 George Hughes

조지 휴즈 George Hughes  Poolside Piano Practice /1960

나는 한동안 아이를 앞에 두고 40분간 동선대로 이번 전시에 대한 설명을 했었다. 이걸 달달 외운다기보다는 각 섹션별 주제에 대한 이해가 우선 필요했고 주제별 작품 선정에 있어 내게 맞는 것을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네덜란드 현대사진의 거장 어윈 올라프에 대해 풀어갔다. 그리고 이번 달은 이번 주 토요일 한 번 더 전시해설이 있다. 평일보다 주말 관람객이 많으니 한 번 더 연습을 해야겠고 연습에 앞서 설명하던 작품 하나와 관련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튤립 피버’ 지금처럼 비트코인이나 주식에 열광하는 것처럼 1600년대 당시에도 비슷한 투기, 테크가 있었으니 ‘튤립 투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상징인 튤립은 사실 동양의 꽃이었다. 그런 꽃을 대량으로 사들이며 네덜란드는 그야말로 튤립의 나라, 튤립 투기의 시대를 맞이한다. 귀족이나 왕족들이 권력이나 부에 대한 과시용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정물화에 등장하는 튤립의 개수로 그 진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하얀색에 붉은 줄이 들어간 튤립은 더욱 특별했다.


이 하얀 튤립 그러니까 ‘셈페르 아우그스투스’라 불리는 돌연변이종은 그 뿌리 하나에 그 당시의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투기시장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분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러면 이 뿌리를 심어 튤립을 수확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집 한 채 값의 10배만큼의 돈을 얻을 수 있어 신흥 부자들이 생겨났다. 네덜란드 금융 역사상 큰 이벤트로 남아 있다.


나는 이번 전시에서 한스 볼론기르의 정물화 작품을 설명하며 네덜란드 금융 역사상 유례없는 ‘튤립 버블’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작품의 하단에 놓인 달팽이나 도마뱀 등을 설명하기 위해 바니타스 정물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허, 헛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바니타스는 정물화에 해골이나 모래시계 등을 그려 넣음으로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헤비메탈 그룹에서도 비슷하게 사용하는데 이 역시 ‘헛되고 헛되도다.’ 그러므로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그것을 기억하고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암시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을 작품 하나에 배경지식으로 이야기하게 되면 조금 더 작품과 쉽게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에 도움이 될 만한 어떤 것이라도 있으면 찾아서 읽거나 본다.


한동안은 내가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저는’으로 시작했다. 입에 붙을 때까지 계속해서 말하기 연습을 했었다. 그러는 사이 남편도 회사에서 새로운 기획을 맡게 되면서 중얼중얼거리던 분위기는 어느새 남편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PT 자료를 만들고 스크립트를 작성해 발표 연습을 하느라 한 달 내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던 남편을 보고 아이가 ‘빵’하고 웃음이 터지던 순간이 있었다.


“으하하하하하, 엄마~ 아빠 너무 웃겨. 으하하하하”


베란다 정리를 하고 있던 중에 터진 아이의 웃음소리에 뭔가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된 게 분명해 무슨 일인가 물었다.


“유한아, 무슨 일이야? 뭐가 그렇게 웃겨?”

“엄마, 아빠가 샤워하면서 혼자 발표하고 있어. 으하하하하”


아이는 남편이 샤워기를 마이크 삼아 들고 발표 연습하는 걸 목격한 모양이었다. 아이의 눈엔 그렇게 만난 한 장면이 웃음 폭탄을 터뜨리게 했고 내겐 웃음보다는 짠한 마음이 들게 했다. 하루하루 일개미처럼 애쓰며 살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드는 마음이었고 아이를 생각하면 방학 내내 여행 한번 데리고 가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차에 터진 아이의 웃음 한방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1년 전, 아이가 과학시간에 받아온 콩 하나를 작은 화분에 심었다. 책장을 휘감으며 힘차게 뻗어가던 작두콩에서 1년 만에 수확이 나왔다. 푸른 잎을 모두 떨구고 새잎이 돋아날 즈음 작두콩 열매는 말라비틀어져 죽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 안에 세 개의 큼지막한 작두콩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것을 더 넓은 화분에 심어볼 요량으로 베란다 청소를 하며 빈 화분 하나에 흙을 주섬주섬 넣고 물을 흠뻑 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방 안에서 터져 나온 아이의 웃음소리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순간의 어떤 상황에서 뒤로 한 발짝 물러나 그 현상을 바라보게 한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에 이따금 찾아오는 아이의 웃음소리, 그 안에서 나는 웃음 너머의 어떤 우리의 서사를 생각하게 된다. 한결같이 곧고 성실한 남편, 나를 찾겠다고 애쓰는 나, 그러느라 바쁜 부모 옆에서 웃음 폭탄을 자주 터뜨리지 못하는 아이. 나를 찾는 일에 즐거움을 갖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항상 존재한다. 어쩌겠나. 지금 아이에게 있는 결핍, 언젠간 그것으로 성장하게 되는 기회가 될는지도.


죽은 줄 알았던 작두콩 열매에서 얻는 뜻밖의 수확처럼 잔잔한 일상의 우리에게도 아이의 웃음 폭탄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빵빵 터지는 날이 오게 될까? 터지든 그렇지 않든 그저 연습 또 연습,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일지도.



조지 휴즈 George O. Hughes

1962년 12월 23일~

가나 태생의 미국 화가


노먼 록웰이 떠오를 만큼 미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데요

데이비드 호크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연습 또 연습 아니겠어요.

그 지루함을 참아내는 일, 기왕이면 이 그림의 아이처럼 자기만의 방법으로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리도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었다죠.^^

제가 그리 살고 싶었듯 말입니다.


누구나 결핍은 있어요.

그걸 극복하며 잘 살아내는 일.

그 힘을 키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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