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함메르쇼이
삶은 내가 애쓰는 그만큼 얻는 것이 생긴다. 사실, 애쓰며 산다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들이지 않는 시간은 어떤 것도 거저 가질 수 없고 그저 없던 시간처럼 사라져 버리게 마련이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적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이 아닌, 내 삶을 살고 있는 만큼 공들여 살고 싶다. 하지만 어제, 오늘 바쁜 스케줄에 오전을 그대로 글을 쓰는데 할애하지 못했다. 아침에 시작한 조각 글을 완성하지 못해 저녁에 덧붙여 적다가 아이를 재우며 함께 잠들어 다시 새벽에 일어나 나머지 공간을 메운다. 어떤 경우에도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더 강하게 든다. 붙잡고 있을수록 더욱 강력하게 이 글쓰기만은 놓고 싶지가 않다.
어린 시절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은 그림과 일기였다.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은 다른 어떤 것도 내 시간에 대신 들어올 수 없었다. 매 시절마다 나는 강력하게 붙잡았던 것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오랫동안 컴퓨터를 붙잡고 디자인 일을 하며 살았다. 결혼하며 일과 공부를 붙잡고 육아를 하며 아이와의 시간을 붙잡으며 살았다. 아이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았던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참 처절하게 나를 잃어갔다. 무엇도 제대로 붙잡을 수 없었던 그 시간이 내겐 지독히도 어둡게만 느껴졌다. 글쓰기를 하며 어렵게 다시 찾은 나를 더욱 강력하게 놓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붙잡을 것이 간절히 필요했던 시절에 나는 글쓰기를 내 나머지 삶을 지탱해 줄 무언가로 정해버렸다.
낮에는 인스타에 프로필 사진을 올리며 내 두 번째 책에 대한 가제목이 갑자기 떠올랐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아직 책 제목으로는 어디에도 없다. 그림 에세이 맨 앞장에 13포인트로 굵게 가제목을 적어 두었더니 왠지 느낌이 온다. 내겐 뭔가 끌어당기는 그런 느낌 같은 게 주기적으로 온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떤 고민들이나 원하는 것들을 품고 있으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우연히도 동시성을 가진 것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남편이 남쪽 지방에 있는 어느 한적한 마을의 시골집을 찾아내 내게 보여주며 어떻냐고 물었다. 400평 남짓 넓은 대지 위에 작은 시골집 한 채가 있는 곳이었는데 가격 대비 괜찮아 보였다. 남편은 어머님의 거처를 위해 시골집 찾는 일이 취미가 되었고 나는 어차피 아이와 내가 함께 내려가야 한다면 그곳에 작은 북스테이를 만들어 내게도 도움이 될 어떤 상황을 상상해 갔다. 처음엔 무조건 안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조금 바꾸니 프랑스에서 3년을 혼자 살았는데 못할 게 뭐 있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도 시골살이를 원하니 중간에 끼인 나는 또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무언가 도전할 거리들을 찾는 것으로 현실에서 도망가지 않고 함께 살아갈 방도를 생각한다.
남편과 함께 시골집을 보다가 미술관에서 독서모임 하기로 한 분들과 약속이 잡혀 있어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나갔다. 그랬던 것이 모임의 한 분이 같은 남쪽 지방, 남편이 보여주던 시골집 근방의 중학교를 추천했다. 나는 이런 우연적인 생각들이 현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무어라 설명하진 못한다. 다만, 내가 지금 또 무언가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그 느낌만은 강하게 든다.
만남의 시작은 읽고 있는 책에 대한 것이었고 쓰는 삶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 자연스레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중2 아이가 게임에 빠져 엄마와의 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다는 분과 수원에서 고창까지 기숙형 중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 차례엔 경쟁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동물을 돌보고 싶어 하는, 읽는 것에 대해 굉장한 즐거움을 가진 우리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한 분이 자신의 아이가 다니고 있는 기숙형 중학교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며 내게 추천을 했다.
전북 고창군 무장면. 어! 내가 집에서 나오기 전에 남편이 보여주었던 남쪽 지방의 시골집이 무장면에 있었는데 내게 기숙형 중학교를 추천하셨던 분이 얘기한 중학교가 그곳에 있었다. 이런 우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내게 설득력을 가진다. 아이를 혼자 내려보낸다고 하면 기절초풍을 하며 안 간다 할 게 빤하고 나는 결국 어머님을 모시고 내려가야 할 운명이던가.
집에 돌아와 남편과 무장면에 있는 중학교를 함께 검색해 보았더니 아이가 좋아할 만한 동아리 활동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 감상 토론을 할 수 있는 영화 감상 동아리, 영상 제작 동아리, 연극동아리 등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해 보였고 문화예술부와 철학부 활동도 재미있어 할 것으로 보였다. 체험활동으로는 지리산 등반, 스키캠프, 작물 재배 활동이 있었는데 숲 체험 활동과 유치원 앞에 커다란 텃밭에서 유기농 작물들을 아이들이 직접 수확해 그것으로 김치도 담그고 바비큐 파티도 했던 경험들이 여전히 아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을 알고 있기에 아이는 작물 재배 활동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이 됐다. 그 근거는 아이가 요 며칠 아침마다 할아버지를 따라 텃밭에 가는데 돼지감자 캐는 일이 힘들지만 즐겁다는 얘길 듣고선 시골형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 학교는 마을 예술 학교로 마을과 연계하여 축제 행사에 지역 주민을 초빙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내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 부분이다. 그렇게 나는 어떤 상황에 대해 절대 부정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좋은 방향으로 사고를 열어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선을 생각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살아간다.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손주를 보며 행복해하는 노년의 혼자된 미망인의 삶에 대해서는 누가 그녀를 위해 살아갈 것인가. 삶은 내가 애쓰는 만큼 얻는 것이 생긴다. 무엇을 얻을 수 있기에 내게 이리도 고민하게 하는가. 나는 언제나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은데 내게 놓인 상황은 끝도 없이 변화무쌍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나의 선택을 지지할 것이다.
빌헬름 함메르쇼이
Vilhelm Hammershøi
[1880~1904]
덴마크의 화가.
회색을 사용해 최대한 정적이고 조용한 화면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 듯한 붓터치를 통해 침묵과 신비감이 나는 작품을 주로 했던 작가입니다.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작품 중에는 실내에서 생활하는 여인들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유명해요.
단아하면서도 사려 깊은 그러나 어떤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힌 그런 작품으로도 보입니다. 그녀들의 삶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있으라고 박제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이중적인 제 안의 내면처럼 그림이 읽힙니다.^^;;
오늘 가져온 그림은 남으려는 자아와 떠날 수밖에 없는 자아 사이의 갈등으로 해석해버렸습니다. 아래는 혼란스러운 제 자아의 대사예요.
"아이가 원하고 어머님도 혼자 계시는데 내려가서 함께 사는 건 어때?"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 밥벌이하는 남편도 불쌍하고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도 가여운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인생이 뭐 별거니? 바람 따라 흐르는 대로 사는 거야. 넌 어디에 가서 무얼 하든 잘 살고 있을 거야. 뭐든 하고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나 계속 글을 써야 될 운명인가 봐. 풀어내야 할 것이 계속 생긴다."
커다란 창 가운데 틀이 제게는 모두 무거운 두 개의 십자가처럼 보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두 여인은 마치 사제 같아 보이기까지 하네요.
수도승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저...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