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2월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올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티베트 속담)
엄마는 그녀의 나이 마흔넷, 찬란한 5월의 어느 날에 내일이 아닌 자신의 다음 생을 맞았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그녀를,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예고 없이 닥친 엄마와의 작별 이후, 나에게는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 같은 공존의 삶이 부여되었다. 망연하게 스러져가는 의식을 붙들 듯 죽음의 그늘이 짙었던 시간을 어렵게 보내고 삶의 빛으로 힘들게 기어 나오며 또다시 원하지 않는 내일이 주어지고, 주어진 내일을 맞는 날들이었다. 젊었을 땐 더 나이를 먹으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덜 할 줄 알았다. 시간의 명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착각이었는지 나이를 더하며 뼈저리게 느꼈다. 시간의 더께를 덮은 그리움은 색이 진해지고 더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내 나이가 그녀가 생을 마감했던 나이와 꼭 같은 나이였던 그 해는 주어진 매일의 시간이 고통의 날들이었다. 나를 더 괴롭게 했던 건 그녀를 위해 작은 것조차 해준 것이 없다는 좌절감이었다. 그녀에게 받았던 보살핌을 갚을 수 없었고, 그녀에게도 있었을 아름다웠던 젊음에 대해 얘기할 수 없었다. 그저 엄마라는 단어로만 존재했다.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부터 엄마 생각이 수시로 떠올랐다. 그와 더불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며 느꼈을 그녀의 삶과 감정에 대하여 들은 기억이 없다는 새로운 사실의 자각이 더욱 막막함을 느끼게 했다. 힘들고 지칠 땐 어디서 위로받았을까. 본인의 삶에 대해 어떤 느낌이었을까. 우리와 살며 행복했을까. 아이를 돌보며 수시로 나의 상황에 엄마의 상황을 이입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게 막연하게 추측하고 그녀가 행복했던 순간을 더듬으며 그녀의 짧은 생애를 기억하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막연함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큰 슬픔이라는 생각도 하며.
가족들에게 수시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중간중간 나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끔씩 일기장에 유서를 써놓기 시작했다. 삶의 회고를 적고 유서와 장례방법, 장례 참가자들의 명단까지 적어 놓는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더불어 당부의 말과 작은 선물 리스트도 기입한다. 선물은 각자의 취향을 고려해 심사숙고해 골라 놓고 장례참가자 명단은 늘 심혈을 기울여 선별한다. 내 삶의 여정에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해 주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던 사람들만으로 추린다. 몇 년에 한 번씩 갱신이 필요한 이유는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가 끊기는 상황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친분도 없는 가족의 지인들까지 모두 와서 정작 고인을 기리는 자리가 사람을 맞이하느라 정신없게 며칠을 보내는 허식은 불필요하다. 소수의 인원이 오롯이 나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조용히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아들이 외동이라 자신밖에 모르는 철부지로 자라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쓰며 키웠다. 그 덕인지 주변도 두루 살필 줄 아는 성숙하고 절제된 사람으로 잘 성장해 준 것 같아 너무나 고맙다. 가장 감사한 부분은 나와 같은 상실의 경험이 없음에도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따로 살고 있음에도 시간을 내서 함께 밥 먹고, 노래방 가고, 아들 세대가 즐기는 새로운 문화도 수시로 알려준다. 내 아이를 키우며 부모들은 그제야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느낌이다. 나와 남편은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가 부모에게 해드리지 못한 많은 어리 석음들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남편이 50대 후반을 지난 어느 날, 유일한 부모였던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성장한 자신의 아이 품에서 처음으로 목 놓아 울었다. 남편과 시아버님은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더 많은 사람이었음에도 그는 굵은 눈물을 떨어트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 아마도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본인 모습을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는 존재의 상실로 인한 뼛 속부터 사무치게 올라오는 본능적인 슬픔이었을 것이다. 부모란 숨 쉬는 동안 오롯이 그 아이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 존재의 상실은 내가 붙들고 있던 줄이 끊어지는 휘청거림을 느끼게 한다. 조금 이르거나 늦을 뿐 누구나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아들이 올해 초부터 계획하고 미리 예약해 놓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장례 행렬을 보았다. 어떤 분이 가셨는지 알 길은 없으나 어느 순간 아들도 우리를 보내는 저 의식을 치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또한,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정신을 놓고 쓰러졌던 나의 모습도 떠올랐다. 아들에게 그 아픈 이별의 의식을 가능한 늦게 치르게 하고 싶다. 나처럼 여린 시기가 아닌 삶의 굳은살이 많이 박인 후에. 더불어 아들의 역사도 오래 기록해 주는 한 사람이고 싶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해가며 나에게 있어 내 삶의 가장 큰 결과물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나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쌓아온 경험도 살기 위해 터득한 기능도 아닌 두 남자와 함께 평온한 가족을 이루고 산 것이 아닐까.
남겨져 본 사람, 상실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쉽게 놓는 것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는 듯하다. 그와 동시에 현재의 ‘찰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된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본인만의 노력과 잘못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깨우치게 된다. 그로 인해 작은 것에 감사하고 소박한 추억들조차 잊지 않고 가슴에 담으려 애쓴다. 남편과 아들이 너무 소중하고 애틋하지만 내가 겪은 나의 삶이 가르쳐 주었듯 그들 또한 언젠가 놓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안녕한지의 안부를 챙기는 일상의 시작,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셋이 함께 도전해 보고 즐기는 특별한 하루, 평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풍경 앞에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경이로움. 쌓아 올리면 올릴수록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고자 하는 간절함에 모래알 빠져나가듯 상실의 삶으로부터 배운 자신의 철학이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 더 오래, 더 많은 시간, 지금의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이 피어오른다.
그래,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