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를 쓴 호메로스는 '잠은 눈꺼풀을 덮어서 선한 것이라고, 악한 것이라고, 그래서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지. 그리고 잘 자는 게 주특기인 나를 길러야 하셨던 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셨지. “만에 하나 네 인생이 망한다면, 그건 잠 때문일 거다.”
요지는, 난 잠을 매우 잘 자고 잠을 잘 자면 대부분 힘든 일도 잘 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불면증이 찾아올 줄이야?
나의 불면증은 몇 시간마다 계속 깨는 것으로 미약하게 시작되어, 아무리 피곤해도, 심지어 새벽 2시에 퇴근한 날에도 잠에 들지 못하는 수준까지 창대해져 갔다. 오늘 마무리하지 못한 일, 내일 해야 하는 일 등등.. 눈을 감으면 업무에 대한 의미 없는 고민들이 머릿속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 새벽에 고민해 봐야 하등 쓸모없다는 것을, 막상 내일 출근하면 별일 아닐 것이란 것을 알면서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멈춤’ 버튼이 고장 난 영사기 같았다.
불면을 이기기 위해 나름 여러 시도를 했다.
하나. 개인 명상 : 그냥 1시간째 가부좌를 틀고 앉아 똑같은 고민을 하는 나를 발견할 뿐
둘. 집단 명상 : 우리나라는 명상 테마의 사이비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셋. ASMR : 간지러운 소리를 들으며 업무 생각을 하는 이어폰을 낀 내가 존재할 뿐
넷. 운동 : (운동을 해봐야 뭐 얼마나 했겠냐만) 퇴근길의 운동은 내 뇌를 각성시켰을 뿐
결국 병원을 찾아가 수면제 처방을 받았고, ‘아 오늘 못 자겠는데?’ 느낌이 오면 바로 먹었다. 수면제 부작용에 대한 걱정과 다르게, 적당한 시간에 생각이 끊어지는 것에 뇌가 적응했는지 서서히 불면도 사라졌다. 아아 이 현대의학의 위대함이란, 역시 요즘 공부 잘하는 애들이 다 의대를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니까.
물 먹은 대형 곰 인형
그런데 곧 주말 과수면이 찾아왔다. 토요일에는 모든 업무 긴장이 풀려서 인지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수준으로 몸이 무거웠다. 마치 탈수를 거치지 않은 세탁한 대형 곰 인형이 된 것과 같은 상태였다.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무거워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그냥 '피곤하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주말에는 온몸에 독이 퍼져있고, 잠을 자야만 그 독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토요일에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길어도 5시간이 안되었고, 일요일에는 오후 1시까지 잠을 잤다. 그 정도를 자야 그 알 수 없는 독이 빠진 느낌이 들었고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 3시까지 회사를 가는 것이 나의 주말 루틴이었다.
회사의 복지를 살뜰히 챙겨 먹는 나는, 이 문제로 회사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꾸준히 찾았다. 포근한 숄더를 두르고, 머그잔 안의 차를 마시며 나를 맞이한 상담가 선생님은 1시간 동안 내 모든 질문과 대답을 하나의 문장으로 대응하셨다. “음… 그래서 어떤 생각이 들어요?”
'이젠 저도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쩌죠. 선생님, 이제 저는 그저 선생님 숄더가 따듯하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목도 좀 마르네요. 다음에는 텀블러도 가져올게요.' 결국 몇 차례 상담을 통해 나의 수면장애는 잔잔한 대화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너스로 또 다른 깨달음도 얻었다. 심리 상담가라는 직업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는 것! 한 가지 문장만 사용해서 일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진지하게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지인에게 내 은퇴 후 진로로 이 직업이 어떨지에 대해 직업 상담까지 받았을 정도로 당시 난 꽤 진지했다.
허망하고도 놀랍게이 과수면은 팀 내 업무 로테이션 이후 자연스럽게 개선되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산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상태가 이러하니 업무량을 조절해 달려든 지 하는 합리적인 제안을 회사에 했다면 조금이라도 짧게 괴로웠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당시의 내가 그런 제안을 논리적인 근거와 함께 전달할 수 있는 상태였을까 하면, 그것도 아니었을 것 같다. 당시의 난, 상황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이해하려 노오오력을 하며 매일 정신승리를 했다. '괜찮냐'는 질문에는 무조건 괜찮다고 대답했었으니까.
운 좋게도 난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타의로 환경이 변해 상황을 벗어났다. 하지만 운이 나쁜 어딘가의 사람들은 그때의 나처럼 매일을 버티고 있지는 않을지, 몸의 경고 신호를 실시간으로 받으면서도 본인의 정신력 부족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지는 않을 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 곧 입이 씁쓸해진다.
사람은 스스로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니 주변의 관심이 새삼스럽지만 정말 중요하다.작지만 지속적인 애정 만이 그 사람에게 어떤 개선의 여지를 떠올리게 하는 자극을 주지 않을까? 당신은 전혀 괜찮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틈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독감에도 출근한 막내 직원에게 작은 소리로 이렇게 인사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