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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12. 2021

마트에서 240만원을 떠억하니 현금으로 냈던 당신...

인도의 마트에서 발견한 '부패'의 그림자

"2만 3천 루피면 한국 돈으로 도대체 얼마인 거야?"


오후에 반찬거리를 사러 시내에 있는 마트에 잠시 들렀던 아내가 퇴근한 나를 쳐다보고서는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인도 루피화 환율과 한국 원화 환율을 모르지 않을 텐데 왜 그러나 싶어서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아내가 마트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집어서 계산대에 섰는데, 자기 바로 앞에 줄을 서있던 보기에도 귀티가 좔좔 흐르는 인도 현지인 아주머니 한분이 무려 2만 3천 루피 어치를 샀더라는 거였다. 우리 돈으로 대충 환산해도 40만 원이 넘는 돈을 명품 가게도 아니고, 백화점도 아닌 수입품 마트에서 계산하더라는 거였다.


화룡점정은 그 다음이었단다. 카드도 아니고 인도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wireless payment 앱도 아닌 고무줄로 곱게 동여맨 두툼한 (액면가 500루피짜리) 현금다발을 고급 핸드백에서 살포시 꺼내서는 사십 몇장을 꼼꼼하게 세어서 계산하는 직원에게 척하니 넘겨줬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인도, 특히 뉴델리의 물가가 갑작스럽게 많이 오르기는 했다지만, 2만 3천 루피면 웬만한 집의 운전기사가 한 달을 열심히 일해야만 벌 수 있는 월급에 거의 육박하는 금액이다. 하루에 8시간씩 빨래하고 밥하고 집안을 열심히 청소해주는 가사도우미들은 한 달을 일해도 그런 큰 돈을 만져보지도 못하는 금액이다.


인도의 1인당 GDP는 2,000달러... 한국의 약 15분의 1에 불과하다. 뉴델리 지역만 떼어놓고 본다면 1인당 GDP가 5,000달러까지 올라간다지만, 그래도 한국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 돈으로 40만 원이라면 인도 물가를 감안한 금액으로는 여섯 배인 240만 원이라는 거다. 한국에서도 한 번에 지출하기 어려운 (인도의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24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외국에서 수입한 간식거리와 고급 향신료, 그리고 반찬거리 사는데 고민 없이 쓰는 사람을 직접 보고 온 아내는 꽤나 놀라워했다.


"나는 애들 줄 간식거리 몇천 루피 사면서도 손이 선뜻 나가지 않는데, 인도에는 정말 부자가 많나 봐."




인도의 어두운 면을 정의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단어가 있을 수 있다. 가난, 빈부격차, 부패, 질병, 낮은 여성의 지위, 종교적 후진성 등등...


하지만, 아내가 마트에서 목격한 그 장면 하나에는 인도가 가진 최소한 2가지의 부정적 상황 즉, 엄청난 빈부격차와 부패의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용기록이 남을 수 있는 카드나 모바일 앱을 사용하지 않고 현금을 사용하는 방식은 부패한 자금을 들키지 않고 사용하는 매우 고전적인 방법이다. 얼마 전에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의 '화이트 타이거'에서도 인도의 사업가들이 정치인들에게 빳빳한 지폐 뭉치가 담긴 '돈가방'을 전달해주는 장면이 고스란히 들어 있을 정도이다.


부자들이 부패를 감추기 위해 현금을 사용한다지만, 가난한 인도인들의 현금 사랑은 이유가 많이 다르다. 대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금세 21세기에서 17세기로 바뀌어버리는 사회환경 때문에 은행 지점은 고사하고 ATM 기기 하나 찾기 어려운 게 인도 농촌의 현실이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한 이후 꾸준하게 농어촌 주민들의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인도 전체 성인중 10명 가운데 약 2명 정도는 은행 계좌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거나 1년에 한 번 이용할까 말까라는 통계가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인도 농촌의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10여 km를 걸어가야만 찾을 수 있는 은행 지점에 돈을 맡겼다가 찾느니 그냥 자기 침대 밑에 넣어두는 게 더 유용할 것이다. 한마디로, 현금을 보유하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현금을 은행에 맡기고 싶어도 맡길 여력이 안되기 때문에 금융기관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거다. 은행 한번 걸어서 갔다 오면 하루가 꼬박 날아갈 텐데 그 시간에 들판에 나가서 이삭이라도 주워야 식구들이 굶지 않는 것이다.




2016년 11월 8일 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예정에 없던 생방송 기자회견을 열고는 '오늘 밤 자정부터 500루피와 1,000루피의 사용을 금지합니다. 연말까지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근처 은행에 가서 바꾸세요. 아참, 그리고 1인당 환전할 수 있는 한도 있어요..~~~'라고 깜짝 발표를 해버렸다. 뭐, 그 이후에 얼마나 큰 혼란이 일어났을지는 독자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그대로이다. 워낙에 고액권을 활용한 뇌물 수수가 기승을 부리다 보니 그야말로 우리나라 같은 정상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등장해서 '국민 여러분. 이제부터 만 원권 사용 못합니다'라고 생방송으로 연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이 되는가? 나는 상상 자체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게 가능한 곳이 바로 인도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인도이니까..ㅠㅠ (This is India~~))


하지만, 이러한 전격 작전이 발표되기 2주 전에 인도 내 판매부수 2위인 힌디어 신문에서 이미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의 사용 중단이 선언될 수 있다는 루머가 보도되었고, 실제로 많은 재벌들은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던 고액권을 급하게 소액권으로 바꾸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한다. 결국, 이런 소식을 발 빠르게 미리 알아내지 못한 죄 없는 서민들만 화폐사용 중지 조치의 피해를 봤다. 평생을 피땀 흘려 모은 돈을 고액권으로 바꿔서 집안에 잘 모셔놓고 있던 도시 빈민층과 농민들 중에서 상당수는 정부에서 정한 '환전 한도'를 초과하는 옛날 돈을 끝끝내 환전하지 못해, 한 순간에 자기 집의 재산이 눈앞에서 날아가버리는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재산이 사라지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아무리 11월이어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인도의 날씨... 몇 시간씩 은행 건물 앞에서 뙤약볕을 맞아가며 환전할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 인파에 밀리고 깔린 사람들, 화병에 목숨을 끊은 사람들까지... 거의 1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2016년 화폐개혁 조치를 전후하여 목숨을 잃었다. 이때의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사용한 인도 영화가 벌써 5편이나 만들어졌다니, 이쯤되면 할 말 다했다.




사람 목숨을 100명이나 희생시킨 화폐개혁 조치가 시행된 지 5년이 넘었다. 인도의 부패 문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국제 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측정한 2020년 기준 부패지수(TI Corruption Perception Index)는 100점 만점에 40점으로 전 세계 180여 개 국가 중 86등이다. 가나, 세네갈, 르완다, 세이셸 같은 많은 수의 아프리카 국가들도 인도보다는 점수가 높다. 우리나라 돈으로 240만 원어치나 되는 돈을 단번에 현금으로 지불하는 인도 부잣집 아주머니가 버젓이 존재하는 한, 인도의 부패와의 싸움은 갈길이 한참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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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2016년에 사용중지된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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