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이타임 Oct 19.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싸움 해결의 Key

 아내와 싸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내가 화가 난 것이다. 우리 부부가 싸우는 원인 99%는 나다. 아무튼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싸움을 길게 가져가지 않는 비법이다. 실제로 이야기해 보면 내 잘못인 경우가 많다.


 아내가 화가 나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인지상정. 성격이 급한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매우 힘들다. 어떻게든 화를 풀어보고자 말을 걸어보거나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나도 기분이 상해버리는 일에 봉착한다.


 우리 부부의 싸움은 격렬하지 않다. 침묵과 무표정으로 대치한다.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겠지? 되도록 필요한 말은 아들을 통해서 한다. 세 살 먹은 아들은 어째서 엄마 아빠가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왜 자꾸 본인 하고만 대화하거나 말 좀 전해달라고 시키는지. “아, 또 우리 엄마 아빠 싸웠구먼!”하고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늘 싸움의 끝이 있다는 것이다. 싸운 순간은 괴롭지만 화해하고 나면 미웠던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진다. 물론 지극히 내 관점에서.


“진짜 미워죽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보 생각해서 사 왔다니까? “


 아내가 싸우고 난 뒤 홀로 장을 보러 갔는데, 김치찌개에 참치랑 스팸을 넣어먹는 내가 걱정돼서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사 왔단다. 내가 미워 죽겠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고는 부글부글 끓는 속으로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여주었다.


 만화 속 여주인공이 어리숙한 남주인공의 신발끈을 묶어주고는 “이렇게 묶으면 절대 풀리지 않아. 찡긋. 너 이제 신발끈 묶을 때마다 내 생각날걸?”하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제 돼지고기 앞다리 살만 보면 아내가 생각날 것 같다. 살다가 살다가 언젠가 아내가 없는 세상을 사는 날이면 장을 보다 마주치는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보며 눈물을 흘리겠지.  이렇게 아내가 생각나는 장면들이 늘어가면 아내 없인 못 사는 늙은이가 되어있을 것만 같다고. 고기가 듬뿍 담긴 김치찌개 한 술 뜨며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참견자 시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