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의 의미
“존나 버러우”에서 유래한 단어로, 현재는 “존나 버티기”로 바뀌어서 널리 알려진 은어. 두 표현 모두 끈질기게 버틴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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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가 있는 이준이는 항상 내게 반말을 한다.
“선생님 쉬는 시간이야?” “밥 먹어?” “청소해?”
“‘요‘자를 붙이라니깐!”을 백 번 정도 말해주다 포기했다.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건 나에게 물건을 빌려갈 때였다.
“선생님, 가위 줘.”
“이준아, 선생님 가위 빌려주세요.라고 말해야지. 가위 빌려주세요. 해봐! “
“선생님, 가위, 빌려, 주세요.”
“그렇지!”
이준이는 이후로도 가위가 필요할 때마다 “선생님, 가위 줘!”하며 다가왔다. 어느 날은 상냥하게 알려줬지만, 어느 날은 답답한 마음에 씩씩대며 “가위 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준이가 “선생님, 가위 빌려주세요!”라고 말하며 가위를 가져갔다. 나는 이준이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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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일로 며칠간 학교를 나가지 못했다. 웬만하면 아이들에게 학교에 못 온다고 미리 말하지 않는 편이다. 개인적인 일을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는 일이 귀찮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안 오면 좋아하는 아이들이 몇몇 있다. 우리반 지윤이는 특이하게 내가 학교에 오지 않으면 울어버린다. 부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지 말아달라며 지윤이에게 미리 안 올 것을 예고했다.
“선생님 다음 주 화요일까지 학교에 못 나와…”
“왜요(흑흑)“, ”와~~~”
오랜만에 학교에 나왔을 때, 갑자기 이준이가 다가와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혹시, 내가 보고 싶었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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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학교에 오는 즐거움을 만들어주고 싶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해주고 싶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환경이 아니다. 아이가 다칠까 봐. ‘왜 우리 아이만’이라며 민원이 들어올까 봐. ‘왜 이런 활동을 한건가요?‘라며 태클을 걸려 마음이 쓰릴까봐. 망설이게 되는 활동이 많다.
‘최선을 다해야지 ‘vs’너무 열심히 하면 탈 난다 ‘ 사이 그 어딘가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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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내 교직생활 최대의 위기가 왔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것이다. 반복적인 문제행동을 일삼는 몇몇 아이들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문제의 아이들을 지도했다. 녀석들은 그게 억울했나 보다. 선생님이 너무 무섭다며 신고했다.
학교전담 경찰관은 나를 아동학대자로 취급하며 물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정당한 지도였음을 증명해 냈다. “아니, 경찰관님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제가 월급쟁이지 선생님입니까!” 자다가도 화가 치밀었다. 그 뒤로 교실만 들어가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어지러웠다.
병가를 내고 깊은 고민을 했다.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교직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유행어가 생각났다. 아내 몰래 이곳저곳 찾아보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에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왜 안 오세요 ㅠㅠ.” 그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남은 기간을 꾸역꾸역 나가야 했다.
올해를 시작하며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열심히 해보자고. 그렇게 만난 지금의 아이들이다. 내가 교실에 없으면 교문에 나와 기다리는 모습이, 급식을 먹고 교실로 향하는 나를 쫓아오는 모습이 귀찮으면서도 참 좋다. 믿어주는 만큼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힘든 순간을 잘 버텨냈다고 오히려 격려를 받는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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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한 선생님이 체험학습으로 일어난 사고로 인해 실형을 받았다고 한다. 누구도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간다. 이젠 교실에 CCTV를 달겠다는 법안까지 나왔으니. 선생님이 방학도 있고 정년까지 월급 따박따박 나온다며 주변에서 ‘철밥통’이라는 말만 안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존버한다. 언젠가 나를 일어서게 하는 좋은 순간들이 또 있겠지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