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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May 25. 2022

딸과 선생님의 경계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정말 별일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와 똑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엄마가 부르신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아침 방송에 나온 일들을 얘기해 주신다. 평소에도 종종 드라마 내용이나 엄마가 즐겨보시는 프로그램 내용을 얘기해 주시는지라 그저 가볍게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쩐지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비교하려고 하신 얘기도 아니었는데 내 나이에 이미 성공해서 좋은 집에 잘 사는 사람 얘기를 들으니 괜히 심술이 난다. 별것도 아닌 일에 왜 부르냐며 퉁명스럽게 말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후회하다 갑자기 스스로가 미워진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아무런 결과 없이 그냥 흘러버린 내 인생의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생기는 미움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어지럽다.


 도무지 집중이 안 돼 읽고 있던 책을 덮어버리고 나갈 준비를 하려고 일어섰다. 그때 밖에서 또 엄마가 부르신다. 


 “딸,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뭔데?”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아 말투도 곱지 않다. 그래도 엄마 옆에 앉아 엄마가 들여다보시던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이거 사진을 보내라는데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어.”


 “이거 지난번에도 가르쳐 드렸잖아. 그러니까 자주 해봐야지.”


 날이 선 내 말에 엄마는 무안한 듯 웃으시며 대답하신다. 


 “나이가 드니까 자꾸 까먹어. 그러지 말고 가르쳐줘.”


 나는 안 그래도 미안해하는 엄마를 배려할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이 한숨을 크게 쉰다. 


 “이번 한 번만 가르쳐 드릴 테니까 다음부터는 엄마가 혼자 하셔. 여기 이거 누르고 여기 이렇게 하면 돼. 엄마가 한번 해봐.”


 엄마는 핸드폰을 받아 들고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신다. 


 “여기 이거 누르라고 했나?”


 “아니, 이걸 누르셔야지. 왜 가르쳐줘도 못 해?”


 내 못된 말에 엄마도 화가 나셨다. 


 “엄마가 모를 수도 있지! 좀 잘 가르쳐주면 안 돼? 너 학교에서도 애들이 모른다고 하면 이렇게 화낼 거야? 됐어!”


 엄마는 내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주방으로 가버리셨다. 혼자 텅 비어버린 손을 멀뚱하니 보다 이번에는 내가 무안해져 방으로 들어왔다.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해 보아도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돌아와 주섬주섬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이런 기분으로 오늘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인사하는 내가 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이 복잡하다. 


 아이들과 열심히 공부하고 오늘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종이접기를 했다. 학도 접고 한복도 접고 바구니까지 예쁘게 접고 나니 아침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려도 나는 화내지 않는다. 아이들이 한번 틀렸던 것을 또 틀렸다고 해도 혼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엄마한테는 그러지 못했을까?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잊을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나 스스로가 미운 마음이 오히려 엄마한테 돌아갔다. 엄마는 내 마음을 다 받아주는 사람이라고 나도 모르게 착각했다. 학교에서는 좋은 선생님인 체하면서 집에서는 엄마한테 못된 말이나 하는 딸이다. 또 나는 이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참 배우는 것이 없는 학생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신다. 슬쩍 옆에 앉아 뭘 보시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흘깃 나를 보시더니 그냥 틀어놓은 거라며 애꿎은 리모컨을 돌린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아이들과 만들고 남은 색종이를 꺼냈다. 


 “엄마, 이거 봐. 이거 요즘 나온 색종인데, 이렇게 무늬가 있어서 한복 만들면 아주 예뻐. 내가 한복 만드는 거 가르쳐 줄게.”


 엄마는 무슨 색종이 접기냐며 관심 없는 듯 내 쪽을 보시다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색종이에 놀라신다. 한 장씩 색종이 무늬를 확인해 보시더니 노란 꽃이 수놓아진 색종이를 고르셨다. 얌전한 학생처럼 색종이를 꺼낸 엄마 앞에서 나도 마음에 드는 색종이를 꺼내 아까 아이들과 접어 본 한복 저고리를 접기 시작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더 능숙하게 종이를 접는다. 금세 뚝딱하고 노란 꽃 저고리가 만들어졌다. 


 “너 바지는 접을 줄 알아? 엄마 바지 접을 줄 안다.”


 아까 아이들과 이미 해봤지만 모른 체하며 이번에는 엄마에게 바지 접기를 배웠다. 엄마는 나보다 더 다정한 목소리로 하나씩 가르쳐 주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엄마, 미안해.”


 “뭐가?”


 “아침에 내가 못되게 말했잖아. 정말 미안해.”


 엄마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서둘러 바지를 완성하고 저고리와 바지를 연결해 한복 한 벌을 만들었다. 

 “됐어. 엄마 다 잊었어. 이거나 봐라. 엄마 한복 한 벌 만들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가 만든 한복을 받아들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나 한복 한 벌 해줬네? 고마워요.”


 내 말에 엄마도 웃으신다. 그 미소가 고마우면서 참 죄송스럽다. 좋은 선생님도 좋은 딸도 전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노력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많이 배우고도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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