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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Jun 03. 2022

피 흘리는 금요일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오늘은 달빛 초등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다. 계단을 올라 교실로 들어서기도 전에 복도로 통곡하는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면서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교실이다. 교실로 들어가 보니 이미 도착한 아이들의 한 옆으로 연두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평소에도 잘 우는 연두지만 아무래도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다. 울고만 있는 연두 대신에 옆에 있는 우람이에게 물으니 연두가 장난치다 넘어졌다고 한다. 보통 넘어지면 무릎을 다치기 마련인데 옷은 멀쩡해 보여 어디를 다쳤냐고 물으니 얼굴이란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우선 급한 대로 아이의 마스크를 벗겨 보았다. 맙소사! 아이의 입이 피투성이다. 놀란 마음에 아이 손을 붙잡고 보건실로 향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나도 놀라 서두르는데 울고 있는 아이의 발이 더디다. 괜찮다, 괜찮다, 별일 없을 것이라는 주문을 아이에게 하는지 나 스스로에게 하는지도 모르는 채 정신없이 보건실로 향했다. 


 보건실에 도착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위, 아래 입술은 터져 퉁퉁 부었고 아래쪽 잇몸에서까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만약 영구치가 부러졌다면 정말 큰일이다. 연두는 계속 울고 있고 내 마음도 같이 타들어 간다. 


 보건실 선생님께서 아이를 치료하고 계시는 동안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래며 계속 손을 잡아 주었다. 자식의 아픈 모습을 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이럴까? 아이를 달래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때 연두의 담임 선생님이 오셨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런 일이 일상인 듯 들어오자마자 피 흘리는 아이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연두야, 그러게 조심해야지.”


 몇 번 뵌 적 있는 연두의 담임 선생님은 오랫동안 교직에 있으셨던 분이다. 선생님은 능숙하게 연두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와주시기를 청하고 별말 없이 팔짱을 끼고 서 계셨다.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리는 동안에도 연두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아픈 것보다도 많이 놀랐나 보다. 


 연두가 걱정되었지만 교실에도 남아 있는 아이들이 있다. 혹시라도 내가 없는 사이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어 담임 선생님께 연두를 맡기고 교실로 돌아왔다. 


 내가 가려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가지 말라고 붙잡는 아이를 생각하니 수업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두의 어머님께 문자를 드렸다. 오늘 수업 전에 사고가 발생했고 미리 방지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병원에 다녀오고 연두가 괜찮은지 연락을 달라 부탁드렸다. 


 다행히 오늘은 나머지 아이들도 열심히 수업에 임한다. 대답도 잘하고 쓰기 노트도 예쁘게 다 쓴 아이들에게 비타민C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즈음 연두의 어머님께 드디어 연락이 왔다. 다행히 연두는 치아가 부러진 것은 아니고 잇몸과 입술에서 피가 날 뿐 큰 상처가 아니라고 한다. 걱정 말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수업 내내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된다.


 학생들을 돌보며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사건과 사고는 언제나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이것은 미리 방지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 할 수도 있다. 오늘의 사고는 수업 시간 때문에 발생하게 되었다. 

 지난주부터 달빛 초등학교가 전일제 수업을 하게 되면서 매주 금요일은 4교시 수업이 끝난 후 방과 후 교실을 열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정해 준 수업 시간은 12시 50분, 그리고 내가 수업 준비를 위해 도착해야 하는 시간은 12시 40분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공간은 원래 다른 선생님들도 사용하시는 연구실이라 내가 내 마음대로 이용할 수가 없어 더 일찍 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눈치껏 수업 15분 전에는 도착해 아이들을 위해 환기도 하고 수업 준비를 하곤 했다. 


 그런데 금요일은 아이들이 12시 10분에 급식을 먹고 너무 서둘러 수업에 오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주에 한 번 수업을 해보고 아무래도 아이들이 너무 빨리 온다 싶어 일부러 수업 2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연두의 어머니께서 평소에도 연두가 과격하게 노는 것을 좋아한다며 선생님 탓이 아니라고 위로는 해주셨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 한편에는 죄책감이 남는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수업이 끝나는 대로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수업 시간 조정을 부탁드렸다. 우선 정식 수업 시간을 10분 앞당기고 각 담임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12시 30분까지 보호하기 계시기를 부탁드렸다. 진작 이랬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고 마음이 쓰렸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니 다행이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연두가 다치고 나도 너무 놀라 아이를 달래기보다 치료에 급급해 버둥거렸던 기억이 떠올라 더 힘들다. 


 아이들은 자주 다친다. 나도 그랬고, 이 아이들도 그렇다. 안 다치고 살면 좋겠지만 인간의 몸이란 참 신기하게도 너무 쉽게 다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할 때에는 조금 더 침착하게 놀란 아이의 마음 먼저 진정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 밤 연두의 꿈에 다친 몸과 마음을 낫게 하는 천사님이 함께 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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