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선오 Jun 09. 2022

누군가의 반짝임을 찾는 일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대학 시절 다른 전공인 친구에게 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친구에게 내 전공을 가르쳐 주고 친구는 나에게 친구의 전공을 가르쳐 주는 일종의 교환 과외 같은 형식이었다. 나는 예전에도 친구의 전공을 배워본 적이 있었고 평소에도 관심이 많아 매번 재미있게 배웠다. 그런데 내 수업을 듣던 친구가 몇 번 배우지도 않고 먼저 과외를 안 받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내가 왜냐고 물으니 친구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 너무 못 가르쳐.”


 생각해 보면 내 전공은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배운 학문이라 어렵기도 했고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이 가르치기에 만만한 과목이 아니었다. 나중에 친구는 내 전공은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고 진실을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이 한마디는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 이후로 교직도 이수하고 교생실습도 나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내가 가르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 원인을 내 전공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계속해서 공부했고 그 선택 이후 나는 평생 공부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오래 공부를 했으면 모르는 것이 없을 법도 한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투성이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도 되는 것일까? 매일 고민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정말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나는 누군가의 장점을 아주 잘 찾는다. 또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을 찾아 격려하고 응원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나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는 누군가의 반짝임을 찾는 재능이 분명히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 햇빛 초등학교의 주연이와 이름이 똑같은 또 다른 주연이가 있다. 주연이는 올해 6학년으로 학급 회장을 할 정도로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다. 비록 기초학력 수업에서 만난 친구는 아니지만 주연이는 내 전공과목을 가르친 내 첫 제자다. 항상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는 주연이 덕분에 매번 수업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컨디션이 안 좋아 쉬고 싶은 날에도 수업만 시작하면 힘이 났다. 더구나 주연이는 정말 재능이 많은 친구다. 공부도 잘하지만 그림도 잘 그려서 어릴 적에 상도 많이 탔다고 한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친구니 다른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수업할 때 나는 주연이의 필기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한 번은 주연이가 필기하는 것을 그냥 넋 놓고 바라본 적도 있다. 이제 6학년인 학생이 글씨를 어찌나 예쁘게 잘 쓰는지 그냥 단순한 필기가 켈라그라피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썩히기에는 아까운 재능이다. 


 혹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손글씨 대회는 없을까 하고 찾아보니 때마침 한 곳에서 손글씨 공모전을 하고 있었다. 1등은 무려 상금이 백만 원이 넘고 1등으로 선정된 학생의 글씨는 학생의 이름을 딴 서체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주연이에게 참가해 볼 생각은 없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주연이도 한번 해보고 싶다기에 집에 있는 원고지까지 챙겨주며 꼭 응모해 보라고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드디어 공모전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놀랍게도 주연이가 1등이었다. 나는 마치 내가 수상이라도 한 것처럼 기뻤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기뻤지만 주연이가 자신의 재능을 반짝반짝하게 빛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했다. 


 이 이후로 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더 칭찬해 주자고 마음먹었다. 그전에도 아이들을 칭찬해 주는 일에 진심이었던 나였지만 혹시라도 눈치채지 못한 아이들의 재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달빛 초등학교의 준우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우람이는 종이접기를 좋아한다. 수업이 끝나고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접기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내 돈으로 도화지와 색종이를 구입했다. 매번 이런 물품을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 종이가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피어날 때마다 나도 행복해지니 이런 돈쯤은 아깝지 않았다.

 

 준우는 이런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는 친구다. 수업이 끝나면 그림을 그려 자신의 재능을 뽐냈다. 위로 형들이 있는 준우는 형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배웠는지 또래 아이들보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묘사도 매우 구체적이다. 특히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하고 색칠도 꼼꼼하게 잘해 준우의 그림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였다. 


 나는 가끔 준우가 그린 그림을 우리 공부방 교실 벽에 붙여 꾸며주었다. 처음에는 그림 그리기 싫다는 친구들도 준우 덕분에 자기도 그림을 그려서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 공부방은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작은 전시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칭찬해 주고 싶은 나의 욕망은 아이들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내 여동생은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그림 대신 생계를 위해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 얼마 전 오래 다닌 회사를 퇴직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동생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때마침 딱 맞는 공모전이 있기에 도전해 보라고 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 말에 시큰둥하던 동생에게 작품을 접수하라고 거의 매일 재촉했다.

 

 동생은 마지못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무사히 접수까지는 했지만 솔직히 결과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동생의 작품이 대상을 받게 되었다. 동생은 대상을 받는 순간까지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동생의 재능은 분명 반짝반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수상 덕분에 한동안 내 별명은 “대상메이커”가 되었다. 내가 받은 상들은 아니지만 사실 조금 우쭐해진다. 덕분에 나는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선생님일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재능을 찾는 일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의 재능을 발견하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기,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잘하고 싶은 일이다.

이전 16화 피 흘리는 금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