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보운전이라 죄송합니다
초보 인생 지나갑니다
차가 생겼다. 차를 샀다고 당당히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럽다. 계획에도 없던 차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기 때문이다.
언젠가 운전하게 된다는 생각은 했었다. 10여 년 전 운전면허를 따고 면허를 갱신까지 했으니 갑자기 운전대를 잡는다고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이른바 10년 묵은 장롱면허를 들고 도로를 누비기에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 되고 만다.
오랜만에 다시 앉아 본 운전석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열차의 한 좌석 같은 느낌이다. 무릎과 양손이 덜덜 떨리고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기분뿐이다. 하지만 나를 가르쳐주는 나의 선생님들은 인정사정이 없다. 시동을 걸고 핸들을 잡고 브레이크의 발을 올렸으니 이제 출발하란다. 내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순간, 나는 정글보다도 위험천만한 도로 한가운데로 몰린다.
사방이 적이다. 커다란 트럭의 엔진 소리가 폭탄이 터지기 일보 직전처럼 느껴지고 옆으로 다가오는 차가 나를 들이받을 것만 같다. 겨우 엑셀에 발을 올리고 뽈뽈거리는 속도로 도로 위를 기어가려니 조수석에 앉은 선생님들의 속이 터진다. 답답한 선생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엑셀을 밟는데 계기판에 찍힌 60이라는 속도가 무색하게 나의 정신은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아니, 운전이 이렇게 어렵고 무서운 일인가? 내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것을 보면 대체 그깟 게 뭐가 무섭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운전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 물론 사람의 생사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의 굴레 속에 있으니 우리는 언제 어디서 건 위험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운전만큼 내 생명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좌지우지할 만한 활동이 없다. 나의 실수로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비행기나 배를 운전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의 경우, 운전이야말로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무서워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운전에 대한 나의 공포는 절대 과한 것이 아니다.
이토록 운전이 무서운 나에게 자동차 키가 주어지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이 있다. 바로 초보 딱지다. 노란색 바탕에 “초보운전, 배려 감사합니다”라는 문구 사이에는 무려 하트도 있다. 사실 이것보다 더 절절하고 애절한 문구를 선택하려 했지만 여기서 양보해야 했다. 나는 예의 바른 운전자가 되고 싶지 불쌍한 운전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만에 도착한 초보운전 딱지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바로 “내 차”라고 불리는 물체 뒤에 섰다. 그 뒤에 서서 몇 번이고 그 차가운 이물감을 느끼고 있으려니 손끝이 아니라 마음이 얼어붙는 기분이다. 툭! 탁! 하고 자석으로 만들어진 내 초보운전 딱지가 차 뒤에 붙었다. 이로써 이 차는 내 차가 되었고 나 역시 진짜 초보운전자가 되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로 나선지 이제 딱 반년이 지났다. 아직까지 도로를 혼자 나서는 것이 무섭고 내게 있어 주차라는 것은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들어가 차를 두고 나오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나도 엄연한 운전자다. 언제쯤 다른 운전자들처럼 핸들을 내 몸과 같이 돌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버스를 타고 다니던 곳에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간다는 묘미를 느껴버렸다. 이게 바로 자동차 오너의 기분이란 것일까? 아뿔싸! 그러나 그 묘미보다 공포가 더 크다는 것이 함정이다.
초보라는 단어는 ‘처음 初’ 자와 ‘걸음 步’ 자가 합해져 처음으로 내딛는 걸음을 뜻한다고 한다. 대체 초보는 왜 이리 힘든 것일까? 나이가 어리다면 아직 경험이 적어 그렇다지만 그래도 나름 꽤 살았는데 아직도 나는 무섭고, 어렵고, 서툰 것투성이다. 운전뿐만이 아니다. 남들이 살아가는 그 보통의 인생 과정이 내게는 모두 어려운 시험처럼 보인다. 이 나이 먹고 이제야 겨우 초보운전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는데 사실 내게 더 필요한 것은 초보 인생이라는 타이틀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직 서툴고 어설픈 내게 누군가는 나잇값도 못 한다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의 지금은 나도 처음인 걸 어쩌란 말인가? 열 살에는 스물을 몰랐고, 스물에는 서른을 몰랐다. 서른이 돼서도 서른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서른이 되어버렸고 내게는 모든 날이 새로운 초보 인생의 첫날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매일 같이 저지르는 나의 모든 서툰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또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타인의 배려와 양보에 감사하고 싶다. 이 글은 이제야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누비는 초보운전자의 초보 인생 이야기다.
초본 운전이라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리고 초보 인생도 좀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