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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Mar 30. 2022

공부하기 싫어요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하늘이 우중충하다. 덥고 습한 날씨에 햇빛 초등학교 아이들의 기분도 좋지 않아 보인다. 평소처럼 문제지를 펴고 수업을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공부하기 싫다고 난리다. 공부도 하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인데 하루쯤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학생이었던 나도 가끔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학생이 아니니 어쩔 수가 없다. 아이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음이 그저 미안할 뿐이다. 


 하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연필을 들리고 수업을 시작한다. 


 기초학력 향상교실의 수업은 국어와 수학 두 과목으로 진행된다. 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수업 시작 전 편성된 예산으로 문제집을 구입하고 그 문제집을 풀게 하는 형식이다. 가르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풀게 하고 채점하는 방식이 가장 편하다. 그러나 이렇게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마다 수준이 달라 문제 푸는 속도도 차이가 나고 분량에도 차이가 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마다 어려워하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학습지를 준비한다. 예를 들어 단순 수식은 잘 풀지만 서술형 문제를 어려워하는 승훈이는 매일 정해진 문제지를 풀고 서술형 문제를 6문제 정도 더 푼다. 처음에는 안 한다던 승훈이도 이제는 제법 자신감이 생겨 자기가 먼저 풀겠다고 문제지를 꺼내기도 한다. 학기 초에는 모두 같은 문제지로 시작하지만 이제는 아이들마다 교재와 단원이 모두 다르다. 아이들의 교재가 다르니 선생님인 나는 정신이 없지만 아이들은 부족한 부분을 더 보충할 수 있으니 좋겠다 싶어 선택한 수업 방식이다. 


 아이들은 보통 국어보다도 수학을 더 좋아한다. 중학생 때부터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유를 듣다 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승훈이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간단한 셈도 어려워하고 구구단도 외우지 못한다. 하지만 수학 문제는 푸는 방식만 가르쳐주면 한 문제씩 천천히 풀 수 있다.


 그런데 국어는 독해력이 부족하다 보니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혹은 답을 알아도 쓰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괜찮다. 나도 모르는 게 많은 어른인데 아이들이 못 한다고 화낼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아이들은 틀린다는 그 결과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실망하고 낙심한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매번 똑같다. 


 “틀려도 괜찮아.”


 이 말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가끔은 아이들이 나 대신 말해 주기도 한다. 틀려도 괜찮아. 못 해도 괜찮아. 이 말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하나의 마법 같은 문장이다. 그런데 이 마법이 잘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오늘처럼 공부가 하기 싫은 날이다. 


 오늘은 주연이가 특히 공부하기 싫은 모양인지 아까부터 시무룩한 얼굴로 애꿎은 연필로 장난만 친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오늘의 학습량을 다 끝내고 게임할 생각에 신이 났는데 주연이 혼자만 문제지 첫 장을 넘기지도 못하고 낙서만 한다. 안 되겠다 싶어서 주연이 옆에 앉아 붙잡고 가르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딴청만 피우던 주연이가 갑자기 연필을 내려놓는다. 


 “하기 싫은데……, 하기 싫은데…….”


 똑같은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빠르게 문지른다. 처음에는 나도 영문을 모르고 바라만 보는데 주연이의 행동은 점점 심해진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계속해서 입으로는 하기 싫다고만 한다. 

 그래, 오늘 같은 날도 있지.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은 날. 그런 날도 공부하라고 한다면 나도 주연이처럼 울어 버릴지도 모른다. 나도 못 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하기 싫다고 쉽게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또 내 입장 아니겠는가. 나는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주연이가 눈물을 그치자 작게 속삭였다. 


 “그럼 주연아, 우리 이 문제지에서 주연이가 아는 문제만 풀자. 모르는 문제는 내일 풀고, 어때?”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연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올려본다. 그리고 천천히 연필을 들어 아는 문제만 풀기 시작했다. 문제의 답을 쓸 때마다 나는 세상 제일 신나는 목소리로 칭찬해 주었다. 


 “이야! 우리 주연이 최고다! 어쩜 이렇게 숫자를 예쁘게 잘 써? 어? 지금 보니 이 밑에 문제도 주연이 아는 문제인데? 그렇지?”


 주연이는 내 칭찬 소리에 맞춰 자신 있게 숫자를 써 내려간다. 내 꼬임에 모른 척 넘어가 준 주연이는 겨우 한쪽을 다 풀고, 난 약속한 대로 커다란 달팽이 표시로 오늘 수업을 끝냈다. 수업이 끝난 후 방과 후 예산으로 매일 주어지는 간식 과자를 손에 들려주자 주연이는 언제 울었느냐는 듯 웃으며 뛰어간다. 


 그래, 이런 날도 있다. 재밌는 게임도 질리는 때가 있는데 하물며 공부를 매일 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이해는 하면서도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싫어하지 않을까? 고민에 또 고민을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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