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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Apr 15. 2022

아이들의 비밀(1)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예전에 우리 어릴 적만 해도 학생에게 비밀이라는 것은 없었다. 우리는 마치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쓰인 이력서 같은 존재였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가족 구성원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직업부터 학벌까지, 하물며 우리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까지 알았다. 


 그때는 이것이 당연했다. 좋은 선생님들은 이를 통해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기도 했지만 일부 나쁜 선생님들에게 이는 이용하기 딱 좋은 약점이 되기도 했다. 어떤 선생님은 일명 촌지라고 하는 뇌물을 공공연하게 원하기도 했고 부잣집 친구들은 선생님께 더 예쁨을 받기도 했다. 또 어떤 친구들은 이혼가정에서 자란다는 사실이 알려져 따돌림을 당하거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때론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처음 수업을 맡게 되었을 때 나는 아이들이 알고 싶었다.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공부하는지.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는 점점 아이들의 비밀 아닌 비밀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햇빛 초등학교의 승훈이는 내가 가르치는 유일한 남학생이다. 덩치가 크고 키도 커서 이제 겨우 열 살인 녀석이 나와 키가 비슷하다. 더구나 덩치만큼 힘도 세서 가끔은 힘자랑을 한다며 등 뒤에서 나를 두 손으로 껴안아 들어 올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어찌나 놀라는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내가 좋아서 이러는 녀석을 도무지 크게 혼낼 수가 없다. 더구나 승훈이가 내게서 엄마의 모습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더 말릴 수가 없었다.


 사실 담임선생님께 여쭤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아이들의 비밀을 몰래 훔쳐 듣는 것 같아 싫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친해지며 저절로 알게 되는 비밀도 있다. 


 승훈이는 아빠와 삼촌,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산다. 가끔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매일 보는 가족 중에 엄마가 없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격주에 한 번 승훈이는 엄마를 만난다. 


 엄마를 만나는 주말은 승훈이가 제일 기대하는 날이다. 그런 주의 금요일이면 승훈이는 신이 나서 내게 자랑을 한다. 


 “이번 주에 엄마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예요.”


 난 그 모습이 너무 천진하고 귀여워 커다란 덩치의 승훈이의 머리를 아기처럼 쓰다듬는다. 승훈이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내심 좋은지 계속해서 머리를 들이밀고 자랑을 한다. 


 아마 승훈이네 부모님은 이혼을 하신 모양이다. 아이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엄마를 보러 가는 주말만 기다린다. 


 나는 이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모에게도 부모의 인생이 있을 테니 아이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는 것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아이들의 슬픔을 목격할 때면 나는 혼자 속으로 운다. 


 어느 날 국어 문제를 풀 때였다. 국어 지문에는 엄마에 관한 글이 나왔다. 돌아가며 지문을 읽다 승훈이가 갑자기 말을 꺼낸다. 


 “아, 엄마 보고 싶다.”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데 그 엄마가 보고 싶어 갑자기 입 밖으로 꺼내고 만 승훈이의 슬픔을 내가 반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겨우 참고 있는데 이번에는 조용히 듣고 있던 유라가 한 마디 더 한다. 


 “나도 우리 아빠 보고 싶다.”


 결국 나는 아이들 몰래 눈물을 닦느라 괜히 나오지도 않는 콧물 탓을 했다. 유라도 아빠 없이 엄마와 동생, 셋이서 사는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유라의 이야기에 항상 아빠는 없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한 건지 별거 중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 얘기하는 엄마의 남자친구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이 그저 미안할 뿐이다.


 오늘 하루 아이들의 비밀이 내 마음을 짓눌러 쉽게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수업을 잘 끝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놀고 집에 가는 녀석들을 보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지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어쩐지 오래 눈에 남는다. 어서 빨리 아이들이 자라 무거운 비밀과 슬픔도 가뿐하게 들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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