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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Apr 29. 2022

우리들은 1학년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드디어 4월 말에 시작한 햇빛 초등학교의 수업이 종료했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배웅하며 이제 너무 더우니 선선한 9월에 보자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예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서운한 기분이 들어 아이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본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또 2학기가 시작한다. 


 방학 동안 얼마나 잘 놀고 왔는지 아이들은 첫날부터 흥이 넘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잘하는 아이들 덕분에 나도 더 힘이 난다. 2시간 동안 내 기력을 다 쓰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는데 이번에는 어쩐지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화하신 분은 달빛 초등학교 4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이신 최 선생님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여쭤보니 기초학력 교실 수업을 부탁하신다. 예전에 달빛 초등학교에 이력서를 낸 적이 있는데 그때 서류를 아직도 보관해두신 것인지 거의 몇 년 만에 온 연락이었다. 솔직히 지금 햇빛 초등학교와 수업이 겹치는 것이 걱정돼 처음에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최 선생님께서 다급한 말투로 내 일정에 맞춰 시간을 조정해 주시겠다고 한다. 지금 햇빛 초등학교 수업이 목요일, 금요일이니 나머지 월, 화, 수는 달빛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해주시고 이후 햇빛 초등학교의 수업이 종료되면 그때부터는 매일 수업하는 것으로 말이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 코로나로 인해 수업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많네요. 아이들에게 기초학력 수업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달빛 초등학교 기초학력 반도 담당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려면 일주일에 15 시차를 넘으면 안 되는데 다행히 그 시간을 넘지도 않았다. 서둘러 아이들의 교재를 선택하고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하려니 조금 걱정이 된다. 예전에 한글을 잘 모르는 2학년 아이들을 가르쳐 본 적은 있지만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글 해독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제 갓 학교에 들어온 1학년 아이들이라니! 1학기를 다녔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어린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걱정보다도 기쁨이 먼저 앞섰다. 이번에는 또 어떤 천사들을 만나게 될까?


 햇빛 좋은 10월의 셋째 주 월요일, 달빛 초등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달빛 초등학교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운동도 할 겸 걸어 다니기 딱 좋은 코스다. 


 아이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새로 산 원피스도 꺼내 입었다. 첫날이라 나 역시도 기합이 들어간다. 


 햇빛 초등학교에서는 교실이 부족해 도서실 한쪽 책상을 빌려 사용했지만 달빛 초등학교는 제법 규모가 큰 학교라 학습 연구실을 우리 교실로 내주셨다. 지난번에 계약서를 쓸 때 미리 수업할 곳을 보고 온 덕분에 오늘 수업을 어떻게 할지 어느 정도 상상이 되었다. 


 교실에 도착해 준비한 수업 자료를 살피고 있으니 1학년 담임 선생님 손에 이끌려 꼬마 친구들이 교실로 들어온다. 


 착하고 듬직한 우람이, 사랑이 많은 연두, 키도 크고 그림도 잘 그리는 준우까지 세 명이다. 그리고 오늘은 오지 못한 단오까지 총 네 명의 학생이 이번에 함께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직 내가 낯선지 의자에 조용히 앉아 나만 보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정말 천사들이 온 것만 같다. 물론 수업이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자 이 귀여운 천사들이 천사의 탈을 쓴 악동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이들에게 내 소개를 하고 우리는 앞으로 이곳에서 수업을 하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병아리같이 한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하는 아이들 때문에 자꾸 웃음이 난다. 오늘은 나도 유치원 선생님이 된 것처럼 예쁜 목소리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오늘 할 학습지를 나누어주고 아이들의 국어와 수학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우람이와 연두는 받침이 없는 쉬운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쓰기는 힘들어하고 준우는 읽기는 어느 정도 되지만 받침 있는 단어를 쓰는 것을 어려워했다. 


 다들 수학은 어느 정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1학년 1학기 교재를 선택해 풀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문제를 읽지는 못해도 간단한 수식은 이해하고 풀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을 하니 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두 달 동안 완벽하게 한글을 해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을 갖고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메고 복도로 뛰어나가는 녀석들에게 내일도 보자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뛰어가다 말고 몸을 돌려 꾸벅하고 인사를 한다. 그 천진난만 모습에 웃으며 교실을 정리했다. 첫 수업이 무사히 끝나니 이제야 시작이라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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