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입사한 회사가..
prologue.
“우리 이만 헤어져”
만난 지 한 달 된 남자친구가 술집에서 갑자기 이별을 고했다. 분명 전날까지 통화했을 때도 전혀 낌새가 없었다. 자칭 이별 감지 전문가인 나로서는 헤어질 만한 어떠한 신호를 전달받지 못했다.
“이유가 뭐야?”
“나 이제 데이트할 돈이 없어. 돈 없이 연애하고 싶지 않아”
“...!”
그때 당시 내 나이 스물다섯,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었다. 회계세무학을 전공하여 세무법인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벌었던 돈을 데이트 비용으로 충당하던 시기였다. 남자친구는 갓 전역한 한 살 어린 학교 후배였는데 말출에 나의 꼬임에 넘어가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 데이트를 하였는데 그 한 달 동안 얼마 되지도 않은 재산을 둘 다 탕진해 버렸다. 남자친구는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단호했다. 하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완벽한 내 이상형의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군대 가기 전부터 그에게 흑심이 있었지만 당시 여자친구가 있어 기회가 없었다. 이번만큼은 놓칠 수 없다며 나는 매달렸다.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연애 한 달은 불타오르는 시기 아닌가?) 단순히 금전적인 부분이라면 이별의 사유가 될 수 없었다. 돈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울며 불며 강하게 어필하였다. 단호했던 그가 서서히 내 말에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술집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그를 설득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야만 했다. 힘없이 밖으로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방에 우산이 있었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아련하게 굿바이를 말하고 비 맞는 ‘안쓰러움’을 무기 삼아 돌아섰다.
나는 빗속을 걸어가면서 속으로 열을 세었다. 열 셀 때 동안 나를 불러 세우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서서 그에게 달려가 안기리라. 하나아, 두우우울, 세에에에에엣, 네에에에에에엣, 다서서서서서서엇, 여...서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엇...!(너 우산 쓴 거 내가 봤는데 안 부르니?)
하는 도중에 (다행히) 그가 나를 돌려세웠다. 그러곤 본인이 쓰고 있던 우산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같이 쓰자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용기를 끌어모아 다시 한번 말했다.
“비 올 때 이렇게 같이 우산 쓰는 것처럼 함께 견디고 극복해 보면 안 될까?”
잠시 말없이 생각하던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들었는데 더 이상 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현재 우리 집 안방 남자다).
나는 뛸 듯이 기뻤고 이내 현실을 자각하며 결심했다.
‘이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디든 이력서를 내보는 거야!’
두 달 뒤, 나는 첫 회사에 입사했다. 어서 빨리 첫 월급을 타서 남자친구에게 자랑스러운 누나미 넘치는, 데이트 비용도 턱턱 내는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다. 부리나케 대기업 계약직이라는 첫 회사의 단추를 끼운 것이었다.
머지않아 그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