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시댁과 친정을 다녀오고 난 뒤, 명절 마지막 날인 오늘은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날이다. 시댁에 가도 딱히 뭐 하는 일도 많지 않고, 친정 가면 또 내 집이니 편안하게 있지만 무언가 '다녀와야 한다'는 의무가 있던 터라 연휴에 쉬고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
지금 사는 곳은 남편의 어릴 적 고향이라 명절 연휴 중 하루 이틀은 그이의 친구들과 커플 동반 또는 삼삼오오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남편이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술을 강제적으로 끊고 있는 중이다. 그이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자동으로 나도 먹지 않게 되었다(혼자 마실 수는 없기에?). 3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옛날 20대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는 시기는 지났지만 끼리끼리 논다고 주변 지인들이 주당들이라 이번엔 연락이 와도 약속을 잡지 못하였다.
모처럼 조용히 보내는 휴식이라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며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안 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요즘 내 머릿속은 '쓰고 싶은 글'에 대한 것들로 차 있다. 몇몇 테마로 목차를 뽑아 놓은 글이 여러 개이고, 어떤 건 프롤로그와 꼭지 글을 작성하였지만 그 뒤를 이어나가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었다. 상담 일을 병행하고 남편이의 건강도 신경 쓰다 보니 '온전히' 글에 집중 못하는 핑계를 대어 보며 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왕 쉬는 거 오늘만큼은 글에 집중하자며 좋아하는 작가님 책 필사로 워밍업을 한 뒤 노트북을 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어서였을까? 어깨에 힘을 빼고 과거에 썼던 글과 목차를 찬찬히 읽으며 수정해 나갔다. 그러자 흐름이 가로막혀 거들떠보지 않았던 글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막혔던 부분을 싹 걷어내고 새로 꼭지를 구성하면서 방향을 조금 틀어주니 전에 부족했던 '설득력'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글에 있어 나조차도 납득시키지 않으면 뒤의 글을 써나가지 못한다. 한창 쓰다가 막히어 오래 고민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버려 그냥 냅두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흐지부지한 테마가 조금 있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이렇게 한번 탁 터지는 날은 글쓰기의 행복 도파민이 솟구친다. ‘그동안의 고민은 역시 고민이 아니었고 이것 또한 과정이구나!'를 잠시 느끼다가 다음 글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 어쩌면 글쓰기는 행복 도파민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힘들게 하는 밑작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