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한 권 출간한 뒤부터 ‘쓰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 생활의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글쓰기 모임을 찾다가, 덜컥 책 쓰기 아카데미에 등록했던 것이 글쓰기의 시작점이었다.
그전에 한 번, 4주간 진행된 글쓰기 모임을 해본 적이 있었다. 직장 생활의 갑갑함을 견딜 수 없어 무작정 찾아 들어간 곳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쓰는 것’이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내 이야기를 다듬으며 글이 좋아지듯,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도 조금씩 치유됐다. 그 좋았던 첫 기억 때문에 글을 쓰지 않았던 내가 원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신호등을 기다리거나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을 때조차 책을 쓰기 위한 오감이 동원됐다. 그때 나는 ‘몰입’을 처음 경험했다. 이전에 느낀 ‘치유’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 정도로 만사 제쳐두고 온몸으로 집중했던 일이 살면서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는 그런 글쓰기에 매료되었다.
운 좋게도 책 쓰기 아카데미 소장님께서 운영 중인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제안했다. 두 달간 같은 기수 사람들과 수업을 들으며 기획부터 목차까지 디렉팅 받았다. 이어진 3개월 동안 혼자 글을 쓴 끝에 나온 결과였다. 초고가 완성되면 개별적으로 투고 방법을 배우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을 건너뛰고 출간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내가 다섯 번째로 퇴사한 회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책이 나오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달여간 편집자와 수정, 디자인 등의 의견 검토 과정을 거친 후 책이 ‘띡’하고 나왔다. 여기서 ‘띡’이라는 표현을 쓴 건, 그만큼 실감이 나지 않아서다. 교보문고 매대에 신간으로 내가 쓴 책이 놓여 있다는 게 신기했다. 눈으로 봐도 내 것 같지 않았다.
이후 나는 책과 관련하여 강의 플랫폼 회사로부터 두 차례 강의 제안이 들어왔고 강사로서 첫 데뷔를 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 채팅창에 올라오는 반응들이 예상보다 뜨거워 묘한 경험이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분명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막상 몰입하니 어느덧 즐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프라인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책 한 권 썼다고 인생이 드라마처럼 달라지진 않았지만, 분명 이전의 나와는 달라져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글로 풀어내는 습관이 생겼다. 쓰는 것만으로 슬픈 일은 덜 슬퍼졌고, 기쁜 일은 감정이 널뛰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시켜 주었다. 감정 기복이 다소 있던 나로서는 글쓰기를 통해 한결 차분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부작용도 생겼다. 책을 내고 시작한 글쓰기라 그런지(단지 한 권뿐인데도), 글을 쓸 때마다 다음 책에 대한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 쓰는 경향이 생겼다. 한 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쓰면 쓸 수 있다는 무언의 확신도 있었다. 언제든지 쓰면 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첫 번째 책이 나오기까지의 여정이 마치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면, 지금은 원고를 다 써놓고도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멈춰 서 있기만 하다. 어느 출판사도 두 번째 원고를 “띡”하고 가져가 주지 않았다. 썼다는 성취보다,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투고를 해본 적이 없다. 나름 수월하게 첫 번째 책이 나온 느낌이라 그런지 그저 책의 콘셉트가 명확하고, 글의 수준이 나쁘지 않으면 출간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안일하게 아무것도 모른 채 덤볐다가, 지금 투고의 어려움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있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원고를 쓰고 책을 내고 강연을 했던 경험이 불과 1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쩌면 나는 글을 쓰는 기쁨보다, 출간이라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자문 해본다. 그런데 명확하게 ‘아니’라고 답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그렇다면 ‘출간’ 도파민에 중독된 저자의 글이 과연 누군가에게 진정성 있는 글일지 아닐지 또 생각해 본다. 나라면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이 글을 읽고 공감되고 도움받는 부분이 있을까.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와 애초에 이 원고를 쓸 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했는지 묻는다. 출간 도파민에 중독 안 됐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는 진심을 담았다고 답할 수는 있었다.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출간을 위해 ‘억지로’ 쓴 부분에 대해 수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야 어찌 됐든 원고를 쓰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결국 ‘쓰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 이제는 쓰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본업은 역학인으로 사주 상담도 글로 하고 있다), 쓰는 게 당연한 삶이 되었다. 두 번째 책 출간은 하룻강아지, 투고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격 같지만, 이왕 꺼낸 칼, 글에 대한 내 진심이 전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