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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커리어 개발 매니저가 되기까지

4) 워싱턴 D.C. 에서의 설레는 인턴십 (상)

by Sean Lee

인턴십 프로그램은 미국 전역의 Christian College 중에서 40명을 선발해, 미국 수도 워싱턴 D.C. 에서 합숙하며 인턴을 하는 American Studies Program이었다. 이 인턴십에 뽑히면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서를 여러 번 고치고 다듬었다. 그리고 대망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드디어 2005년 가을,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비행기에 올라 워싱턴 D.C.로 향했다.


숙소는 D.C. 안에 있었는데, 무려 2층 침대가 세 개 놓여 있어 6명이 함께 지내는 구조였다. 한국 대학 기숙사에서도 4명이 지내는 건 만만치 않은 훈련이었는데, 6명이 함께 생활하는 건 또 다른 도전이었다. 내가 배정받은 인턴십 기관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World Vision이었다. 주 20시간 인턴십을 하고, 나머지 9학점은 수업을 들으며 40명의 학생들과 한 가족처럼 지내는 프로그램이었다.

D.C. 에 있는 월드비전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D.C. 도시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마침 가을이 막 시작하는 시기였고, 떨어지는 낙엽들, 맑고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곳곳에 늘어선 고풍스럽고 웅장한 정부 건물들을 보며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당시 나를 행정적으로 잘 가르쳐 주신 상사 한 분과, 콜럼비아 로스쿨 출신의 엘리트 미국 변호사 상사 한 분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대학교 인턴은 그 자체로 많은 사랑을 받는 존재라,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특유의 미소로 활짝 웃으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일을 처리했다. 물론 실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두 분 상사께 나름 귀여움을 받으며 첫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인턴십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미국 국회의사당(Capitol Hill) 미팅에 가는 것이었다. 상사분들이 인턴에게도 국회에서 열리는 미팅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고, 갈 때마다 미팅 노트를 작성해 오라고 하셨다. 미팅 참석은 양복과 넥타이가 정석이었기에, 국회에 가는 날이면 항상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국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미팅 룸에서 여러 안건들이 토의되고 상·하원 의원들의 질의응답이 오가는 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경험은, 캔자스 시골 대학생이었던 내게 그야말로 큰 문화 충격이자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은 작은 대학생 인턴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워싱턴 D.C. 의 큰 무대에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된 것이다.

[photo credit: vast photos]

40여 명의 친구들과 인턴십이 끝나 숙소로 돌아오면, 각자 하루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인턴 중에 재밌는 일이 있었는지 경험을 나누었다. 그리고 옥상(루프탑)에 올라 Capitol Hill 건물 위로 걸린 빨간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소중했다. 종종 혼자 노을이 지는 미국 국회를 바라보며, ‘나중에 꼭 다시 이곳 D.C. 에 와서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D.C. 에서의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은, 미연방 판사님께 식사 대접을 받고 집에까지 초대를 받아 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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