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생들이 친구를 사귀는 법
커리어 개발 매니저로 일하면서 이번 학기부터는 한 과목씩 수업도 가르치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커리어 수업을 가르치고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학생 및 고등학생들에게 진로와 적성 관련 특강을 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기에, 새로운 기대를 안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내가 맡게 된 수업은 First Year Experience 수업으로, 조지워싱턴대 학생이라면 첫 학기에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다. 수업의 주된 내용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학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와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안내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을 하며 이력서(Resume) 작성법도 익히는 것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역량 향상을 위한 다양한 그룹 활동도 진행한다.
처음으로 나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자라 20살까지는 미국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던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지 유머를 곁들여 설명했다. 수업 마지막에는 인간 빙고(Human Bingo) 게임으로 마무리했다. 빙고는 25칸 중 친구들에게 여러 질문을 해서 이름을 채우고, 두 줄을 완성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상품은 국경을 초월해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초콜릿! 빨리 완성한 학생 3명에게 직접 사 온 초콜릿을 나누어 주며 수업을 마쳤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학생들이 게임을 하며 표정이 밝아지고 수다스러워지는 모습이 참 반갑고 화기애애했다. 특히 한국계 학생이 1등을 했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셨다고 했다. 수많은 미국 대학 중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재미있는 일은 수업이 끝난 후에 일어났다. 보통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질문할 시간을 주고, 나는 마지막까지 교실에 남았다가 나온다. 그날 두 명의 남학생이 남았고, 한 학생이 내게 물었다. “그렇게 여러 지역을 오가며, 또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일하셨으면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적응하셨나요?”라는 어른스러운 질문이었다. 나는 솔직히, 처음엔 이전에 있었던 곳과 정들었던 사람들이 그립지만 한두 달 지나면 “이곳이 이제 내 고향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지내려 애쓰다 보면 적응된다고 답했다.
그러자 A학생이 B학생에게 말했다.
“Wow, I really like the stickers on your bag.”
(네 가방에 붙인 스티커들 정말 멋지다.)
칭찬을 받은 B학생은 기분이 좋았는지, A학생의 가방을 보며 “네 가방도 엄청 쿨한데 뭐 들어 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A학생은 가방을 열어 보여줬는데, 무려 CD 플레이어와 CD 몇 장이 들어 있지 않은가!
“That’s so sick!”
(그거 완전 미쳤다!)
B학생은 감탄하며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주었고, 둘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교환하며 교실을 나갔다.
방금 나는 미국 대학생들이 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바로 앞에서 목도했다. 서로에 대한 칭찬을 아낌없이,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주고받으며 마음을 여는 모습이 신기했다. AI가 인류의 삶을 급진적으로 바꾸고 있는 2025년에, 여전히 CD 플레이어와 몇 장의 CD를 케이스째 들고 다니는 A학생은 정말 특별해 보였다. 문득 20여 년 전, 선물 받은 파나소닉 CD 플레이어를 소중히 들고 다니던 나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레트로의 정석을 보여준 이 학생,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Photo from HomeDep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