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일하며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에 위치해 있고, 약 25,000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데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학생들이 있다. 미국 이름의 경우 흔히 알려진 Sarah, Jane, David, Joseph 같은 이름도 있지만, 최근에는 Brooke, Owen, Warren, Courtney 등 다양한 이름이 쓰인다. 또 남미에서 많이 쓰는 이름, 아프리카계 이름, 중국계·인도계·중동계 이름까지 정말 다양하다. 그런 이름들을 기억하고, 또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번 학기 수업을 시작할 때도 출석부에 적힌 몇몇 학생들의 이름을 보면서 ‘이건 도저히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싶었다. 그래서 미리 유튜브에서 발음을 찾아 연습한 뒤 출석을 불렀다. 사실 그중 한 학생의 이름은 아직도 발음이 잘 안 돼서, 출석을 부를 때 은근히 그 학생 눈치를 보곤 한다. 이럴 때마다, 적힌 대로 실수 없이 발음할 수 있는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직원 단체 채팅방에서 한 직원이 글을 올렸는데, 사람들이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Sean, 내가 조금 전에 상담했던 한 학생이 너를 엄청 칭찬했어. 그 학생이 ‘Sean이 와서 했던 발표가 정말 도움이 됐다’고 미팅에서 나한테 말해줬어.”
마치 뷔페에서 스테이크가 구워져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낚아채는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직원들의 축하 이모티콘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칭찬 댓글을 쏟아졌다. 약간 과할 정도의 축하와 칭찬 문화가 미국에서 일하며 느낀 흥미로운 점 중 하나이고, 나 역시 그런 문화를 배우려 애쓰고 있다. 미팅이나 채팅방에서, 작더라도 칭찬할 일이 생기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거침없이 축하와 칭찬을 쏟아붓는 문화다. 이를 ‘Kudos’ 혹은 ‘Shoutout’이라고 하는데, 칭찬에 대해 그 직원에게 따로 좀 더 자세히 물어봤다.
“그 학생이 네 발표도 참 좋았다고 했는데, 특히 좋았던 건 발표할 때 자기 이름을 기억해 줬다는 거야.”
사실 그보다 3주 전쯤 내가 속한 공과대학에서 신입생 환영 행사로 래프팅(Rafting)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약 100명의 신입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래프팅을 하며 여러 명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 한 명이 Sydney라는 학생이었다. (맞다, 호주의 도시 이름과 같다.) 똘똘해 보이기도 하고 인상도 좋아서 이름이 무의식 속에 남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발표하러 갔을 때 마침 그 학생이 눈에 띄어서 “Sydney?”라고 불렀더니, 자기 이름을 기억해 준 것이 그렇게 좋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인생의 또 다른 진리를 깨달았다. 이름을 기억해 주는 것. 그것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름과 함께 칭찬 한마디를 곁들여 부른다면, 관계는 더욱 따뜻해질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학생들의 칭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이름을 외워야겠다고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