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늘 두 번째가 더 맛있다 | EP.12
비는 왜 꼭 마음의 속도를 바꿔 놓을까.
가을비는 여름비와 다르다.
세차게 내리지도
길게 퍼붓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뭔가를 미처 말하지 못한 사람처럼
서성거리며 떨어진다.
창문에 닿는 빗방울도
톡- 하고 사라지지 않고
한참을 머물다
조금씩 흐른다.
마치 마음 속에 오래 묵힌 생각처럼.
ㅡ
가을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괜히 속도가 느려진다.
평소보다 천천히 걸어서
우산 끝에 맺히는 물방울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괜히 지나가는 바람의 냄새를 더 오래 맡아본다.
비가 오면 모든 소리가 잠잠해진다.
차 지나가는 소리도,
사람의 발걸음도,
내 마음속 말들도
어딘가 눌러앉아 조용해진다.
가을비를 듣고 있으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조금은 흐르고,
잊지 못했던 생각도
조금은 희미해지고,
지나간 마음도
살짝 젖어 부드러워진다.
비는 모든 걸 적시지만
그 적심 속에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말라간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빗줄기에 실려 흘러가는 느낌.
ㅡ
그래서일까...
가을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슬픔도 그리움도 미련도
모두 한 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서.
오늘 비는
그저 비가 아니라
마음을 천천히 덮어주는 얇은 이불 같았다.
시원하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그냥 ‘괜찮아질 수 있을 만큼’만.
가을비가 내리는 날엔
나는 늘 조금 더 고요해진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나를 가장 선명하게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