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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인간의 발자국으로 흐른다

1부 인간을 바라보다 - 관찰의 계절 | EP.02

by 마리엘 로즈


인간을 사랑해버린 영혼의 기록

구미호의 시선



나는 오래전부터

시간을 하나의 둥근 원으로 보아왔다.


계절이 돌고

달이 차고

모든 것이 떠오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흐름.


영원을 사는 내게 시간은

끝이 없는 원이었다.


그런데 인간에게

시간은 원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 선이었다.



그들은 과거를 자주 돌아보았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에도

몇 해가 지나도록 마음을 붙잡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으로 먼저 만들어두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의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후회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붙잡고

불확실한 것을 두려움으로 채워 넣는 일.


하지만 인간을 오래 지켜보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들의 시간은 짧았고,

짧기 때문에 소중했다.


유한함은

그들이 가진 결핍이자

가장 뜨거운 힘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영원을 가진 나에게도

결핍이 있었다.


끝이 없는 생은,

감정이 닳지 않는다.

아무리 울어도 마음은 마모되지 않고

아무리 기뻐도 온도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영원은 편안했지만

때로는 잔혹할 만큼 무감각했다.


그런데 인간들은

짧기 때문에 더 깊이 사랑했고

금방 스러지기 때문에 더 진하게 아파했다.



나는 그들의 발자국을 보며

처음으로 시간의 ‘선’을 이해했다.



앞으로 흘러 사라지는 것들,
다시 오지 않는 계절,
더는 잡을 수 없는 하루들.



그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는 삶의 모양을 만들고

감정의 불꽃을 만들었다.


나는 그 선 위에 남겨진

따뜻하고 서투른 발자국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유한함은 슬픔이 아니라

감정이 가장 빛나는 자리구나.”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영원을 슬프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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