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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남아 있는 마지막 온기

EP.06 말장난처럼 남아 있는 따뜻함

by 마리엘 로즈


의자 등받이에 남은 온도를 만졌는데
내 손이 더 따뜻해서
누가 누구에게 정을 주고 간 건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됐다.



책상 위 머그컵은 속이 텅 비었으면서
아직도 따뜻하다고
은근슬쩍 체온 부심을 부리고 있었다.



문 손잡이는
누가 잡고 갔는지도 모르는데,
혼자서 데워져 있는 걸 보면
비밀 연애라도 하는 것 같다.



초겨울 공기는
사람 마음을 슬쩍 간지럽히는 재주가 있는데,
특히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나 건조해졌어” 하고
미리 선전포고를 하는 타입이다.



따뜻한 빨래를 개다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났다-
나는 왜 빨래한텐 온기를 느끼면서
사람한텐 종종 시린 바람처럼 굴었을까.



손끝에 묻은 먼지는

내가 털면 다시 들러붙고,

내가 또 털면

또 들러붙었다.

이 집요함은 거의

둘만의 오래된 루틴 같다.



주전자 뚜껑은
물 끓을 때마다
자기가 세상 제일 뜨거운 줄 알고
근엄하게 우는데,
막상 잠깐만 지나도
너무 싱겁게 식어버린다.
이 부분만큼은
나와 똑 닮아서 인정하기로 했다.



난방기를 켜자마자
바람이 펑 하고 나를 감싸는데
그 와중에도
내 발끝은 먼저 춥다고 항의했다.



전등 스위치를 눌렀는데

불보다 내 기분이 먼저 켜지는 바람에

겨울 우울이 잠깐 당황한 것 같았다.



손끝에 닿는 것들은
대부분 금방 식지만
가끔은,
차갑게 식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들도 있다.
문제는 그게 뭐였는지
정작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는 점이다.



그래도
별 의미 없는 따뜻함들은
이상하게 오래 머문다.


오늘 하루도
딱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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