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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는 동안에도 너는 자라고 있었어

삶이 나에게 말을 걸다 | EP.02 기다림이 말했다

by 마리엘 로즈


기다림은 삶이 보내는 두 번째 메시지였다.


상처보다 덜 아프지만,
어쩌면 더 견디기 어려운 방식으로
나를 멈춰 세우는 존재였다.

나는 늘 빨리 알고 싶어 했고,
빨리 정리하고 싶어 했고,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기다림이 찾아오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 자주 불안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정체된 마음이
내 삶을 뒤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림이 삶의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멈춰 있는 동안에도
너는 자라고 있었어.”


처음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고
그저 시간을 흘려보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그 시간이 내 안의 소음을 가라앉혔고
버텨야 할 자리에 뿌리가 내려갔고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균형이 맞춰지고 있었다.




기다림은 다시 속삭였다.

“네가 멈춰 있었기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고,
놓치고 있던 네 마음이 들렸어.

서두르면 잡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흘러가야 비로소 손에 닿는 것들도 있고.”


그 말이 천천히 내 안에 스며들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조급함을 내려놓은 순간들마다
삶은 기적처럼 다른 길을 열어주었다.

지연된 것처럼 보였던 일들은
사실은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이고,
머물러 있던 시간들은
나를 한층 깊숙한 곳으로 이끌어 주고 있었다.




기다림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멈춘 시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야.

삶이 너에게 속도를 가르치기 위해
조용히 남겨둔 계단이었을 뿐이야.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아.

너는 멈춰 있는 동안에도
분명히 자라고 있었으니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기다림은 내 삶의 빈칸이 아니라
내가 단단해지기 위해
삶이 공들여 만들어준
가장 고요한 토양이었다는 걸.

그리고 오늘도 나는...



기다림이 남겨둔 침묵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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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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