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스민 계절 | EP.11
마음의 온도가 가장 낮고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
겨울의 일요일 저녁은
하루와 한 주의 끝이 동시에 겹쳐지는 시간이다.
창밖엔 이미 어둠이 내려있고,
방 안 공기는 낮 동안의 온기를
간신히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마음은 묘하게 솔직해진다.
주중엔 외면하던 감정들이
하나둘, 천천히 떠오른다.
ㅡ
어쩌면 겨울 일요일 저녁이
이렇게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내일을 준비하는 긴장 때문이 아니라
오늘을 완전히 떠나보내야 하는
작은 이별이 숨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저녁 시간이 깊어질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
ㅡ
창문을 닫고
부스스한 담요를 다리 위에 올려놓으면
그제야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누구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잠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사라지지 않은 작은 허전함도-
모두 이 시간에는
솔직하게 얼굴을 드러낸다.
ㅡ
겨울의 일요일 저녁엔
큰 위로나 화려한 계획이 필요 없다.
그저 따뜻한 차 한 잔,
조용한 조명,
그리고 나의 호흡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오늘을 천천히 정리하다 보면
마음 어딘가에는
아주 미세한 온기가 남는다.
ㅡ
겨울 일요일 저녁,
이 시간의 고요함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천천히 비춰주는 조용한 거울 같다.
그리고 그 고요함 위에서
우리는 또 한 주를
조금 더 다정하게 준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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