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인간을 이해하다 - 감정의 결 | EP.04
인간을 사랑해버린 영혼의 기록
구미호의 시선
나는 인간이 사랑을 말할 때마다
특유의 향기를 느꼈다.
따뜻하지만 어딘가 낡아 있고
부드럽지만 깊은 상처의 기운이 스며 있는 향기.
그들은 사랑을 꿈처럼 말했지만,
그 꿈 안에는 오래된 통증이 함께 묻어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왜 기쁨이어야 할 감정에
고통의 그림자가 따라붙는지.
하지만 인간을 오래 지켜보며 깨달았다.
ㅡ
사랑은
처음부터 고통을 품고 태어나는 감정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면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게 되고,
내어준 마음만큼
잃을 가능성도 커졌다.
그 위험을 알면서도
그들은 사랑을 택했다.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과거의 상처 위에 피어났다.
누군가 떠나간 자리,
말하지 못한 후회,
돌아오지 않는 계절의 흔적.
그 오래된 감정들이
새로운 사랑의 향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조금 슬펐다.
누군가를 품는 동시에
다시 잃을 준비를 하는 감정이었으니까.
영원을 가진 나에게
사랑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었지만,
유한한 인간에게 사랑은
삶의 중심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ㅡ
나는 그들의 사랑을 보며
생각했다.
사랑이 오래된 고통의 향기를 닮은 이유는
상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사랑하려는
그들의 용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희미하게 아린 마음 위에서
그들은 다시 사랑을 배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사랑을 부러워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나의 감정보다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인간의 사랑이
더 강하고 더 깊어 보였다.
그들의 사랑은
짧아서 아름다웠다.
언젠가 끝날 것을 알면서도
지금의 온기를 붙잡으려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인간이 가진 가장 깊은 감정의 *흔결(痕結)이었다.
*흔결(痕結)
:'상처와 감정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무늬'
라는 의미로 제가 빚어 본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