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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33)

제433편 : 고두현 시인의 '망고 씨의 하루'

@. 오늘은 고두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망고 씨의 하루
고두현

지쳐 퇴근하던 길에
망고를 샀다.

다 먹고 나자
입안이 부풀었다.

저 달고 둥근 과즙 속에
납작칼을 품고 있었다니

아프리카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노예선을 탔구나.
너도.
-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2024년)

#. 고두현 시인(1963년생) : 경남 남해 출신으로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으로 그 신문에 ‘한경 시 읽는 CEO’와 ‘고두현의 아침 시편’을 연재하고 있음.




<함께 나누기>

제가 처음 이 시 제목을 보았을 때 ‘망고 씨의 하루’가 아닌 ‘망고씨(망고 씨앗)의 하루’인 줄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망고씨의 하루’라는 어감이 쉬워보여서. 헌데 자작시 해설을 읽어보니 망고씨가 아닌 ‘망고 씨(氏)’였습니다. 망고를 인격화한.
띄어쓰기를 달리함으로 전혀 뜻이 달라진 경우의 예는 우리말에 참 많습니다. ‘공사다망하신(공적, 사적 일로 매우 바쁜)’을 ‘공사 다 망하신’으로 띄어쓰면 전혀 엉뚱한 뜻이 되지요. '아빠가 회 사줬어요'를 '아빠가 회사 줬어요'로 잘못 띄어쓰면 우습고도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시인의 시 창작 노트를 옮깁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담담하게 쓴 시입니다. 일과 후 지친 상태에서 망고를 사 와 허겁지겁 먹었죠. 그런데 잠시 후 입안이 부풀어 오르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어요. 그 순간 ‘저 달고 둥근 과즙 속에 납작칼을 품고 있었다니’라는 문장이 떠올랐죠. 달콤한 열대과일 속에서 느껴지는 ‘칼’의 은유가 즐거움 속에 숨어 있는 고통, 풍요 속에 감춰진 폭력성, 식민지와 노예무역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망고의 씨’와 ‘망고 씨(氏)’를 의인화하는 맛까지 담아냈고요.”

시로 들어갑니다.

“저 달고 둥근 과즙 속에 / 납작칼을 품고 있었다니”

망고를 먹다가 입안이 부어오르는 알레르기를 느끼자 망고씨의 모습이 칼처럼 보여 그걸로 아프리카로부터 팔려온 노예로 연결시킴은 시인의 뛰어난 역량을 보여줍니다.
저는 망고씨와 칼을 잇는 표현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투탕카멘의 단검’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운석(운철)을 녹여 만든 단검인데, 발굴 당시 3천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녹슬지 않은 상태로 발견돼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위대한 유물입니다.

“아프리카로부터 / 여기까지 오는 동안 // 노예선을 탔구나 / 너도”

망고는 인도가 원산지인데 포르투갈 제국이 식민지인 아프리카로 옮겨 심어 망고농장을 지어 아프리카인을 수탈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 뒤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어 망고뿐 아니라 숱한 작물을 수탈하고, 흑인들을 강제로 잡아다 노예로 팔기도 하고...
화자는 망고 먹다가 알레르기가 생긴 까닭을 바로 그런 노예들의 원성에서 왔다고 봤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망고가 우리나라 마트까지 오게 됨을 ‘노예선에 승선’한 것에 비유함은 시인만의 독창적 표현이라 하겠지요.

오늘 시의 제목을 ‘망고 氏의 하루’로 해야 함에도 그냥 ‘망고 씨의 하루’라 함에 시인의 의도를 엿봅니다. '씨'의 의미를 하나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망고씨’도 되고 ‘망고 氏’도 되도록 만든 중의법.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요.
그리고 마지막 시행에 “너도”를 슬쩍 끼워 넣음으로써 화자인 ‘나도’ 함께 하는 효과를 거둡니다. 즉 내가 망고가 되기도 하고, 내가 망고를 수확하는 노동자가 되기도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세세한 묘사가 시 읽는 맛을 돋우게 한다고 봅니다.



*. 첫째 사진 망고씨와 둘째 투탕카멘의 단검이 좀 비슷해 보입니까? 제가 말한 단검은 두 개 중 황금으로 된 칼날만 남은 단검과 닮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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