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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가지치기할 때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32)

* 지금은 가지치기할 때 *



과일나무의 가지치기는 11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한 달 사이에 주로 한다. 소나무 같은 관상수는 2월 중에도 하지만. 우리 집에는 가지치기해야 할 과실수는 댓 종류 넘는다. 뽕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무화과나무, 모과나무...
한 번이라도 시골살이 한 적 있다면 가지치기의 중요성을 알리라. 키가 너무 크면 수확할 때 힘들고, 병충해 예방과 튼실한 과일 생산을 위해 꼭 필요하다. 우리 집 마스코트 뽕나무는 현재도 너무 높이 솟았는데, 가만 놔두면 하늘에 닿을 정도로 솟을 터이니 잘라주지 않으면 오디를 포기해야 한다.
감나무는 백 년쯤 되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이미 뿌리 쪽에 어른 한 사람 들어갈 정도로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그러니 가지 치지 않으면 잎에다 감의 무게가 더해질 무렵에 태풍이 불어닥치면 버티지 못하고 이내 쓰러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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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몇 해 동안은 가지가 뻗어 나오면 나오는 대로 뒀다. 가지가 길고 많으면 좀 더 과일 많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감나무는 주인의 얄팍한(?) 계산을 잘 받아들여 정말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한데 착오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달린 감이 채 익기도 전에 반 이상 떨어지는 게 아닌가. 또 홍시까지 가더라도 다른 집에 비해 훨씬 잘았다. 알고 보니 가지로 올라가는 영양소는 일정한데 감당할 양보다 더 많은 감이 달리니 잘 수밖에. 게다가 가지가 많아 햇빛도 적게 받아 자라는 도중 족족 떨어졌다.


과실수는 이맘때 가지를 쳐야 하나 현관 앞 네 그루의 분재용 소나무는 가지에 물 오르기 전인 2월쯤 하는 게 더 좋다고 한다. 분재용이라 했지만 이제 분재 크기를 지나쳤다. 예전 직장 동료가 비싼 돈을 줘 샀다는데 부득이한 일로 키울 수 없다기에 그저 얻었다.

처음엔 신이 났다. 책을 보면서 물 주는 시간과 양, 방제약, 가지치기 등을 글 쓴 이의 지시대로 따라 했다. 허나 게으른 성격에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다. 다시 누군가에게 주나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땅에 바로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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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물뿌리개의 물 대신 비를 맞고, 화분의 옭아맴에서 벗어나선지 정말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다. 소유를 멀리 하니 소유가 찾아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엔 못 미치지만 나름의 '무소유' 실현에 얼마나 쾌재를 불렀던가.

그런데 이 녀석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적당히 커주기를 바란 나의 기대와는 달리 커도 너무 커버렸다. 잎사귀가 워낙 무성하다 보니 이젠 분재가 아니라 산에서 막 자란 소나무랑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몇 년 전 골프장에서 알바를 하며 전지(剪枝) 기술을 맛본 게 이럴 때 참 다행이었다. 그 뒤로 2월 중순쯤 가지치기를 했는데 모양도 빼어나고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가지치기의 효험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런데 작년에 깜빡 잊고 예년보다 늦게 소나무 가지치기를 하니 예상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한 겨울엔 가지를 잘라도 송진이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그때는 자르자마자 송진이 배어 나왔다. 나무도 제 아픔을 이런 식으로 보여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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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픔이 아픔만으로 끝나지 않고 잘라진 상처 부위에 균이 침입하면 나무의 생육에 지장을 받게 된다. 그러니 이왕 자르려 했으면 빨리 잘라줘야 했다. 괜히 뒤로 미뤄 더 아픔만 준 셈이다. 이런 깨달음으로 내년 2월엔 잊지 않고 할 작정이다.


문득 과일나무 가지치기를 하면서 우리 마음에도 가지치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너무 많은 잔가지, 이기심 ㆍ과욕 ㆍ질투 ㆍ독선의 잔가지가 뻗어 나왔으니 말이다. 이 잔가지는 즉시 잘라내 버려야 한다.

나뭇가지가 빽빽하면 햇빛이 들어올 틈이 별로 없지만 쳐내면 햇빛을 많이 받는 이점이 생긴다. 물뿐 아니라 햇빛 역시 나무 자람에 가장 기본이니 튼실하게 자라게 하려면 가지를 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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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잔가지로 꽉 채워졌다 보니 깨끗한 마음 ㆍ용서하는 마음 ㆍ배려의 마음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 가지치기를 하여 그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그 사이로 고운 심성이 들어올 여지가 있지 않을까.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얼굴에 잔가지, 아니 잔금이 많다. 이 잔가지야 돈만 들이면 어느 정도 해결하리라. 허나 마음속에 엉망진창으로 난 쓸데없는 잔가지는 돈으로 쳐낼 수 없다. 그러니 거울 속의 '나'가 빨리 쳐내라고 한다.


*. 오늘 글은 2021년 12월 29일 올렸는데,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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