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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38)

제438편 : 이해인 시인의 '친구야 너는 아니?'

@. 오늘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배달합니다.


친구야 너는 아니?

이해인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도

참 아픈 거래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참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잣말처럼 하시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날


친구야

봄비처럼 고요하게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 싶은 내 마음


너는 아니?

향기 속에 숨긴 나의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

너는 아니?

- [기쁨이 열리는 창](2005년)


#. 이해인 수녀(1945년생, ‘해인’은 필명) :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하였으며, 세례명은 ‘벨라뎃다’ 수도자 명은 ‘클라우디아’. 일반적인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냄으로써 시인으로 활동함.




<함께 나누기>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읽으면 누구나 이해가 가고 또 운율도 살아 있어 낭송하기 좋다는 점일 겁니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오랜 투병 생활과 고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라 위로와 희망을 주고 마음에 평화가 스민다는 점이겠지요.

오늘 시도 그렇습니다. 일단 제목 「친구야 너는 아니?」에서 마치 오랜 벗이 곁에서 속삭이는 듯이 들려 평화를 얻게 만드니까요. 시구 하나하나를 책갈피에 끼워두고 꺼내 읽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도 쉽게 스며들어 따로 해설함이 오히려 시를 망칠까 싶어 그냥 두렵니다.

다만 시를 읽으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달걀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선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이 필요하다' 달걀의 껍질을 깨뜨리고 병아리로 태어나기 위해선 어미닭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론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번 주는 월요일엔 목사, 화요일엔 스님, 수요일인 오늘은 수녀님, 내일은 이슬람의 전설적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시는 다 다르나 마음을 열리게 만들어 평화를 마음에 가득 채우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래서 아직 나다니기에 그리 춥지 않으니 시 해설 대신 마음에 평화가 스밀 만한 장소 소개로 대신하겠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그곳에 가면 참 좋습니다. 먼저 ‘사찰’로는 전북 완주군에 있는 ‘화암사’(지리산 화엄사가 아님)를 찾아가 봅니다.


(전북 완주군 화암사)



그곳이 지금은 차가 올라갈 수 있게 돼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안도현 시인의 시 「화암사 내 사랑」을 읽고 찾아간 십여 년 전에는 약 30분 정도 산길 헤치며 올라가야 했습니다. 땀 흘리면 시 속 표현대로 ‘잘 늙은 절 한 채’가 보입니다. 땀 닦으며 눈을 주면 그곳에 국보 ‘극락전’과 보물 ‘우화루’가 고개를 빼꼼히 내밉니다.

극락이란 국보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30분 가까이 산길 올라와야 하니, 극락(천국)만 원할 뿐 거기에 이르는 공덕 쌓기를 피하는 사람에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절입니다.


(왜관읍 가실성당)



다음으로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가실성당’을 한 번 찾아가 보십시오. 여기도 잡념을 없애고 평화가 머물도록 만드는 곳입니다. 작은 시골성당처럼 보이지만 경상도에선 두 번째로 일찍 건립된 성당이며, 6․25 동란 중 낙동강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을 때 야전병원으로 쓰인 역사적 의미도 지닙니다.

이름 ‘가실(佳室 : 아름다운 집)’처럼 참 이쁜 성당입니다. 도회지에 자리한 성당과는 달리. 저만치 떨어진 곳에 낙동강이 흘러가면서 손짓합니다. 영화 [신부수업], 드라마 [정년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배경이 되었으니 더 말할 필요 없겠지요.


(경주시 현곡면 용담정)



그리고 천도교 창시자 최재우의 탄생지이면서 성지인 ‘용담정’도 참 좋습니다. 저는 해마다 네댓 번은 이곳을 찾습니다. 굳이 동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사에 깊게 새겨진 그 이름을 다들 기억하실 줄 압니다.

주차장에서 용담정에 이르는 길은 몸이 불편하지만 않다면 웬만큼 다 걸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어느 계절에 가도 상관없고 다만 나를 묶어두지 않고 놓아두고 싶은 분을 뜨겁게 환영하는 곳입니다.


오늘 시를 인용하면서 끝냅니다.

“친구야 너는 아니? 의외로 마음에 평화를 주는 곳은 이름이 알려진 곳보다 덜 알려진 곳이란다.”


*. 세 곳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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