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이건희컬렉션 : 이중섭
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어느 카페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공연 전시 정보를 검색하기 위함이었다. 음대생 이전에 예술 애호가로서 평생을 살아온 탓에 수시로 공연 전시 정보를 검색 하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예술 작품도 사람과 같은지라 인연이 닿아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게 경험을 통한 나만의 지론이다. 간혹 어떤 이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문화생활을 지속하는 나에게 이번만 기회가 아니라는 듯 말한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기회를 굳이 내 손으로 놓칠 필요 있을까?
학기를 마치고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리운 얼굴들, 그리운 표정들 이 많기만 하다. 인연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개중에는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인연도 길지만 짧게 느껴지는 인연도 있다. 이리 생각하니 인간관계는 예술 작품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분석하느냐 보다 얼마나 가슴에 와닿았는지, 얼마나 마음을 움직였는지가 훨 씬 중요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맞닿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얽히고설킨 소중한 인연들은 언 제나 우리의 인생 전반을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인연의 그물망 속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에 뿌리내린 것은 ‘가족’이라는 두 글자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서울에 살았을 적에도 집에서 30분만 가면 예술의 전당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몇 분 걸으면 그뿐인 거리였다. 서울 집에 도착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어머니는 나에게 한가득 쌓여 있는 박스 더미를 보여주셨다. 유년 시절부터 독일로 유학 가기 전까지 내 손을 거친 물건들을 전부 남겨두신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건들을 살펴본 뒤 버릴 것과 간직할 것으로 하나하나 분류했다. 정리를 끝내자 어머니는 나에게 또 다른 상자를 건네셨다. 작은 상자를 열어 보니 학창 시절에 다녀온 공연과 전시회 티켓들이 한 데 모여 있었다. 얼추 개수를 보아 한 달에 못해도 5~6번은 다녔던 것 같았다.
“저 때 엄마, 아빠 제일 힘들 땐데...”
어머니의 주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흰머리를 바라보았다.
가족들이 강북구로 이사한 터라 도착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근처에 애정하는 식당이 있었음에도 인근 미술관에 들어가 본 적 없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고 미술관 특유의 선선함이 와닿았다. 저 편에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근처에 부모가 있을 것이다. 어젯밤 내 옆에도 부모가 있었듯이. 나는 어젯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얘 왜 이래? 어릴 때 다 가봤는데”
읽던 책을 내려놓은 아버지와 빨래 개는 어머니 사이에 미지근한 기류가 흘렀다. 기억이 불온전 할 때 시간은 기억을 일소에 부친다.
기억에 남는 그림이 몇 점 되지 않았다. 다른 그림들이 인상 깊지 않았다거나 흥미롭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나의 발걸음을 강제로 멈춰 세운 몇몇 그림들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림 들을 바라보고 이중섭과 마주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초면이었다. 편지화의 글씨체만 머릿속에 선명하고 은화지의 아이들은 무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중섭의 공간을 걷고 또 걷다가 이내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한 쪽 벽면에 ‘가족’이라 적혀 있었지만 큰 글씨 옆으로 즐비한 설명문을 구태여 읽진 않았다. 가족 세션엔 말 그대로 가족을 담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가족이 살던 동네, 온 가족이 모인 모습...가족과 관련된 화가의 회상이었다. 그중에는 나를 유독 오래 붙잡은 그림 한 점이 있었다. 제목은 <즐거운 가족>이었다. 가족 의 모습은 굉장히 특이했다. 나는 지금껏 가족을 나체로 그린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오직 이중섭의 가족만이 헐벗은 몸이었다.
5년이면 길다곤 못해도 짧다고도 못할 타향살이다. 평생을 가족들과 떨어져 살다 간 이중섭도 나처럼 인생의 한철을 유럽에서 보냈다. 언젠가 등굣길에 우연히 스쳐간 한 장면이 떠오른다. 트램이 정차한 어느 정류장 의자엔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칼바람 부는 겨울날, 어머니는 아들이 영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녀는 멀대같이 키만 큰 아들의 패딩 지퍼를 올려주고 옷매무 새를 다듬어 주었다. 못해도 20대 중반은 돼 보이는 아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결혼조차 하지 않은 내가 모르긴 몰라도 자식에게만 느껴지는 온기가 있으리라 짐작한다. 너와 나로 마치지 않고 밥상에 숟가락을 함께 늘린 배우자에게만 느껴지는 온기 또한 있으리라 짐작한다. 누군가의 부모로서,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누군가의 배우자로서 산다는 건 서로가 서로의 열매라는 뜻이 아닐까?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인연도 길지만 짧게 느껴지는 인연도 소중한 법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 전반을 지탱하는 그물망의 시작점은 길고도 깊은 가족이라는 인연이다.
당일 내가 보았던 이중섭의 그림 속엔 아이들과 가족만이 옷을 입지 않았다. 현재가 과거를 안아야 과거도 현재를 안는다. 평생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기러기 아빠로 지낸 이중섭 화백 또한 기억을 통해 가족을 보고 기억 속 가족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그의 그림은 애련의 씨앗에서 탄생한 외로움의 소적(蕭寂)한 열매이다. 더없이 수수하고 순수했던 그들의 모습은 끊이지 않는 발길로 오늘도 새 생명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