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현실과 자아실현
내가 작곡 공부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다 돼 간다. 학창 시절엔 나와 친구들의 진로가 얼마나 다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음대 지망생이 자사고를 다녔으니 체감할 기회가 전무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엔 문과 학우들과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 앉아 같은 수업을 듣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음악 시간이나 동아리 시간에 피아노를 칠 기회가 남들보다 두세 번 많았던 것만 빼면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 들려온다. 이따금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 속에는 직장 상사와 사회에 대한 갖가지 욕설들이 담겨 있다. 독일에서 오선지에 콩나물 대가리나 그리는 나는 아직도 그놈의 사회가 왜 계속 술을 권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언젠가 인규형이 나에게 물었다.
“너 예술이 뭔지 알아?”
나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 너무 방대한 질문 같은데?”
그러자 인규형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누르며 말하였다.
“얼마 전에 지인 소개로 업계 선배 화실에서 잠깐 일했었는데, 그 선배가 점심시간에 밥 먹다가 갑자기 ‘인규, 너 말이야 예술이 뭔지 알아?’하고 물어보는 거야. 그래서 나도 너처럼 대답 못하고 멀뚱멀뚱 있었거든. 근데 그랬더니 갑자기 '예술은 매일 라면만 끓여먹다가 조금 뜨면 라면에 계란 하나 풀어먹는 거야.'라고 하더라고!”
나는 마지막 문장을 듣자마자 그대로 폭소했다. 인규형도 기대한 반응이 나왔는지 광대를 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우리의 웃음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웃음기가 사라지니 쥐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맑은 하늘에 푸르른 가로수가 싱그러웠다. 새소리가 들려오는 평화로운 가로수길 한구석에서 우리는 나지막이 내뱉었다.
“X발…”
친구들이 현실에 대해 고민할 때, 나는 이상향에 대해 고민했다. 친구들이 세속적 이치를 탐구할 때, 나는 자아에 대해 탐구했다. 친구들은 자신만의 높은 탑을 원하지만, 여전히 나는 탑에 갇힌 공주가 구하고 싶다.
‘가난한 예술가’란 말은 이미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었다. 예술가가 정말 가난한 직업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술가라서 가난한 게 아니라, 예술을 하다 보니 가난해지는 것이다. 사실 반대로 놓고 보면 직장인들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만은 않다. 사회로 나가 세속적 이치와 타의적 기준에 맞춰 살다 보면 마음이 가난해지기 마련이다. 먼 훗날 내 친구들도 자아에 대한 방황을 시작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 방황 속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것들이 돈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도 슬슬 앞가림을 염두에 둘 나이다. 인규형은 NFT 회사에 취직했다. 재료비 벌려고 잠깐 다닌다고 했던 게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강남역으로 출퇴근하는 형의 모습이 아직도 나에게는 어색하다. 형이나 나나 학창 시절만큼의 에너지는 없지만, 이 정도 무기력이야 그동안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쏟았던 대가라고 생각하자.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물색해 봐야겠다. 뭐라도 시작하면 뭐라도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현실적인 문제를 다른 예술가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몰라도 나는 일단 라면을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