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arami’s Diary(30)
11월 7일
새벽 2시경 갤럭시S8이 6년여의 일기를 끝으로 사망했다. 8은 충전기를 꽂은 채 80% 남은 배터리를 100%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메신저 알람이 울려서 그를 집어 들었을 때 그는 부르르 떨었다. 평소의 진동과는 다른 떨림이었다. 떨림이 멈추고서는 한동안 제조사 로고만을 디스플레이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전원 버튼을 30여 차례 연타했다. 8은 점점 뜨거워질 뿐이었다. 나는 그를 침대에 내려놓고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단 말이다!
고민 끝에 유심칩을 빼내었다. 유심칩을 제거하자 비로소 8은 꺼졌다. 온통 검기만 한 액정으로 시름에 잠긴 내 얼굴이 비쳤다. 8은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몸피, 우아한 오키드 그레이 컬러, 돌출된 곳 없는 미끈한 카메라 렌즈가 나는 좋았다.
사실 8은 2020년 10월에 은퇴를 했었다. 3년이 넘도록 사용하는 동안 고장 한 번 없었지만 노화는 어쩔 수가 없는지 배터리 성능이 떨어졌다. 하루에 2,3번 충전을 해야 했다. 그것 말고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평균 2년 만에 교체되는 다른 휴대폰에 비해 너무 오래 혹사한 것이 미안해 그를 다시 케이스에 넣어 주었다.
그런 그를 스리랑카에 오기 이틀 전에 다시 꺼냈다. 그의 사진첩 안에는 2018년 스리랑카의 곳곳이 담겨있었다. 그런 그와 함께라면 이번 스리랑카에서의 생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8에 스리랑카의 통신사인 'dialog'의 유심을 꽂고 전원을 켰을 때 그는 나를 반겨주었다. 우리는 다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스리랑카 곳곳을 누볐다. 그 안에는 나의 스리랑카 생활 전부가 기록됐다.
또한 그 안에는 내 6년의 추억이 담겨있다. 사진과 영상, 수많은 전화번호와 메시지들. 다시는 8과 소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될수록 나는 동요했다.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도 생각났다. 그러나 당장 수리점으로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생활공간에서 한참 먼 곳에서 여행 중이었고, 시간은 새벽 2시다.
8에서 빼낸 유심칩을 카메라 및 손전등으로 사용하던 갤럭시노트20에 이식했다. 20에 와츠앱을 설치하고, 카카오톡에 로그인하고 우버도 업데이트했다. 그러나 8을 완벽하게 대신하지는 못했다. 8이 수신한 메시지를 노트20에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어쩌자고 8에 그 모든 것을 맡겨버렸던 걸까. 떠날 기미라도 보였으면 백업이라도 해놓았을 텐데, 완벽하게 기능을 하다가 이렇게 갑자기 가버린 8이 야속하다. 부디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