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 비움을 돌아보다.
지금 현재는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80년대 일본이나 90년대 외환위기 이전 우리나라처럼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의 발전은 끝임없이 거듭되고 있다. 이미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작은 컴퓨터(스마트폰)를 가지고 다닌다.
남녀노소 불문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부터 유치원에도 가지 않는 아기들까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닌다. 과거 국민 컴퓨터라 하여 전국민적인 보급이 이뤄졌지만 노년층과 미취학아동까지 보편적으로 쓰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스마트폰의 보급은 괄목할 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컴퓨터나 스마트폰, 태블릿은 수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뛰어난 성능과 휴대성, 그리도 다기능성을 무기삼아 수많은 전자기기들을 집어 삼켰다. MP3, PMP, 전자사전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기기들이 스마트폰의 아성에 밀려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는 과잉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왔다. 불과 60, 70여 년 전 매끼니를 걱정하던 나라에서 지금은 작물의 시장 가격을 맞추기 위해 애써 키운 작물을 갈아 엎거나 미처 팔지 못하고 남은 가공식품 재고를 처리하지 못해 무단투기하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부족해도 문제지만 과해도 문제인 것이다.
지금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과잉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 공부, 작업을 할 때 집중을 방해하고 시간을 갉아 먹는다. 자기전 유튜브를 켜서 이번 영상만 더 보자는 생각을 하다가 하룻밤을 지세운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아이패드로 글을 쓰다 보면 자료를 찾기 위해 웹서핑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삼천포에 빠져 글을 제대로 못쓴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이러한 스마트 기기들은 워드나 엑셀 같은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앱이 있는 반면, 유튜브나 OTT, 게임 등 재미 있는 앱들도 너무 많다. 열심히 글을 쓰다가 유튜브 추천영상 알림이라도 뜨면 이 만한 장애물이 없다. 석가모니가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에게 라훌라(장애물)라고 할때 감정이 이런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던 차에 몇 달 전 스마트 타자기라는 물건을 알게 되었다. 그냥 타자기도 아니고 스마트 타자기라니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다. 물론 타자기에서도 수동식, 전기식, 전자식 등의 하위 카테고리가 존재하고 전기를 쓰는 타자기도 있다. 하지만 활자에 잉크를 뭍혀 종이에 물리적으로 기입한다는 방식은 종류 불문 동일하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스마트 타자기는 이런 전통적인 타자기와는 결이 다르다. 우선 잉크를 쓰지 않고, 종이도 전자 종이를 쓴다. 그래서 종이를 넣는 공간 대신 액정화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또한 전통적인 타자기처럼 타이핑을 위한 키보드가 마련되어 있다. 외형은 타자기와 노트북 사이 회색지대에 놓인 것 같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순수하게 글만 쓰는데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굳이 성능 좋은 노트북, 태블릿을 놔두고 글만 쓰는 스마트 타자기를 살 필요가 있어? 그러나 그것이 바로 스마트 타자기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타자기는 문자 그대로 글을 쓰는 기계다. 이것이 노트북, 태블릿과 차별화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걸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원천 차단하여 오로지 글쓰기만 할 수 있게 만든다. 마치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만화가를 골방에 가두고 만화만 그리게 만드는 통조림처럼 작가 스스로가 책상 위에 골방을 만드는 것이다.
글만 쓰면 되기 때문에 인터넷이 필요없고. 색상이나 화질도 필요없고, 높은 성능 조차 필요없다. 그저 충실하게 글만 쓰면 된다. 과잉의 시대에서 비움을 택한 것이다.
과거 국내에 처음 스마트폰이 도입되었을 때는 폰으로 워드 작업, 이메일 확인 등 업무를 볼 수 있다고 광고까지 할 정도였다. 과거엔 많은 기능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웠다. 그러나 프리라이트는 기능 없음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운다.
수많은 기능을 한번에 처리하려고 하던 풀소유의 시대에서 중요한 하나만을 취하는 덜소유의 시대로 변화한 것이리라 본다. 프리라이트는 비움으로서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예술 사조 중에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있다. 단숨함에서 나오는 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겉치례를 걷어내고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미니멀리즘이다. 이런 점에서 스마트 타자기는 글쓰는 도구에 있어서 미니멀리즘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한계점은 명확하다. 글만 쓸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보면 글밖에 못쓴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료 찾거나, 기분 전환용으로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첨부하는 등 인터렉티브한 기능을 쓸 수 없다. 결국 자료를 찾거나 음악을 들으려면 결국 스마트 기기의 손을 빌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방해받지 않고 오직 글만 쓴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낄 만하다. 사실 전통적으로 많은 작가들은 많은 도구를 필요하지 않았다. 헤밍웨이는 낡은 기계식 타자기로 <노인과 바다> 같은 명작을 탄생시켰으며,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육필원고 위에 대서사시를 펼쳤다. 결국 모든 작가들에게 원초적으로 필요한 도구는 아주 특별한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이러한 스마트 타자기를 취급하는 브랜드로는 미국의 아스트로하우스(Astrohaus)와 일본의 킹짐(KING JIM)이 있다. 찾아보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찾은 건 이 두 브랜드 뿐이다.
아스트로하우스는 프리라이트(Freewrite)와 트레블러(Traveler) 두 가지 모델을 구비하고 있다.
프리라이트는 타자기의 전통을 우직하게 이어간 유물 같은 물건으로 진짜 타자기 같이 생겼다. 타자기의 컨셉을 타협하지 않고 가져와서 그런지 과거의 타자기 못지 않게 몸집이 커서 휴대하기 불편하다. 자판의 스위치는 카일 박스축 중 갈축을 썼기 때문에 타자기를 치는 맛이 난다.
그리고 와이파이를 통해 드롭박스, 구글 드라이브, 애버노트 등의 앱과 호환이 가능해서 파일을 옮기기 편하다.
트레블러는 이름처럼 휴대성이 강조된 모델이다. 외형 자체는 타자기 보다 노트북에 가깝다. 가볍게 들고 다니기 좋다. 차 없는 나같은 뚜벅초들에게는 트레블러가 더 낫다.
다만 기계식 스위치를 탑재하여 전통적인 키보드의 키감에 가깝게 재현한 프리라이트에 비해 경량화 되어 비교적 가벼운 가위식 스위치를 썼기 때문에 키감이 떨어진다.
그리고 아스트로하우스는 자사 제품에 한국어와 한글 자판을 지원한다. 그래서 한국 사용자들도 어려움 없이 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국내 정식 발매도 하지 않았고, 수요층도 많지 않음에도 이러한 조치를 해준 아스트로하우스의 관대한 처사에 감격한다.
킹짐은 일본회사로 문구류를 취급하는 회사다. 그냥저냥한 스타트업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나름 중견기업이다.
킹짐의 스마트 타자기는 포메라 DM30 포켓 타자기이다. 프리라이트처럼 6인치 전자잉크 액정을 가지고 있다. 데이터는 내부 메모리에 저장하거나 SD카드, 마이크로 5핀 유선 연결을 통해 옮길 수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QR코드를 생성해 전용 스마트폰 앱으로 데이터를 옮길 수도 있다고 한다.
다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파일 하나당 5만자 까지만 읽을 수가 있다고 한다! 단편소설 정도만 쓴다면 큰 무리가 없겠지만 장편으로 넘어가면 파일을 나눠야 된다...
결론적으로 기능적으로는 프리라이트가 더 낫다. 프리라이트는 클라우드와 연동이 되기 때문에 번거롭게 파일을 옮길 필요가 없다. 포메라는 SD카드를 뺴든, 선을 연결하든, 전용앱과 연동하든 절차를 거쳐야 해서 번거롭다. 그리고 포메라는 더블에이 건전지 2개가 필요하지만 프리라이트는 C타입 충전선으로 기기를 충전할 수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애초에 포메라는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이 스마트 타자기를 쓴다면 영어나 일본어로 글을 쓰지 않는 이상 선택지가 정해져 있다. 여러모로 포메라는 휴대성을 제외하면 프리라이트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나에게 글쓰기 도구로 프리라이트와 아이패드 프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