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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Dec 09. 2022

호주, 지인의 장례식에서 했던 생각들

이상적인 장례의 모습은?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90을 넘긴 J는 남편과 태즈매니아섬(한국으로 치자면 제주도쯤 될 것이다) 패키지 여행에 나섰다가 그곳에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한밤중 숙소의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었고 남편은 아침이 되어서야 그녀가 옆에 없음을 알았단다. 안으로 잠긴 화장실 문을 겨우 열고 호텔 직원과 들어갔던 일, 구급차에 실려간 그녀가 다시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사망에 이르렀는데 검사 중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어 연차의 충격을 받았던 경황을 할아버지는 담담히 말했다.

여행지에서 배우자가 사망했고, 코로나로 격리까지 해야 했던 상황이라 할아버지는 곧 짐을 챙겨 홀로 비행기를 타고 귀가했다. 가족과 주변인들은 황망한 죽음에 모두 놀랐지만 곧 이성을 차렸다. 건강하게 지내다가 좋아하던 여행지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즐겁게 살다 가셨으니 호상이라는 것이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몇 가지 건강 문제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순회하며 검진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듣고 치료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장례 날짜는 유족 맘대로.

다니던 동네의 교회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J의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이미 지병으로 사망했다. 몇 해 전 60대의 아들을 암으로 먼저 보내고 슬퍼하던 그녀가 떠올랐다. 장수하는 노인들은 종종 장수하지 못하는 노년의 자녀들을 앞세우기도 한다. 장남은 퀸즐랜드 북부에서 트레일러(캠핑카)를 타고 5일에 걸쳐 내려오는 방식을 택했다. 비행기를 타면 3-4 시간 걸릴터인데 큰 차를 끌고 장거리 운전을 하며 슬슬 내려오겠다는 여유는 뭔지...


호주에서는 유족들이 편의에 맞게 장례 날짜를 정하는 것도 같다. 어떤 지인은 장기 해외여행(한 달 이상) 중 요양원에 머물던 노모의 부음을 들었는데 유족들이 오히려 '간만에 간 여행이니 다 마치고 오라' 했다며 서둘러 귀국하지 않았다. 지인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가족들과 장례 절차를 논의하면서도 계획했던 여행을 조용히 마쳤다. 그리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온 가족은 그제야 따뜻한 장례를 편안히 치렀다.


2. 추도사에 관하여

호주 장례식엔 추도사(Eulogy)가 꼭 있다. 유족들 중 누군가가 나와 고인의 삶을 정리하거나 지인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는 시간인데,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고인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라 귀 기울여 듣게 된다.

가령, 머리가 하얀 중년의 아들이 아버지를 회고하며 '금요일 저녁이면 아빠와 식탁에 마주 앉아 카드놀이를 했는데 그 어린 시절 추억이 지금 너무도 사무친다'고 울먹이면 듣는 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눈물짓고는 하는 것이다.


J는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장례 절차는 물론 추도사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었다. 유산 목록도 몇 번씩 업데이트하며 공증을 해놓는 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 봐야 소용없다. 자유분방한 아들은 추도사가 적힌 종이를 며칠 전에 건네받고도 깜빡 잊어 장례식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는 몇 가지 얘기를 두서 없이 하며, '엄마는 핸드백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옷장을 여니 수십 개가 끝도 없이 쏟아지더라..'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하아!!! 그녀의 삶이 이렇게 정리가 되다니...

곧이어 단상에 오른 동성애자 손자는 '내가 18살 되었을 때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20불을 보내주셨다. 햄버거도 사 먹고 좋았다. 그 후로 20년이 넘도록 크리스마스 때마다 20불씩 보내주신다'며 웃었다. 그녀를 잘 아는 지인들은 함께 웃지 못했다. 할머니의 90 인생을 너무 가볍게 정리해 버린 것이다. 


내가 알던 J는 훤칠한 키와 늘씬한 외모가 돋보이는 금발(말년엔 백발이 되었지만)의 미녀였다. 그녀는 부유해서 수영장이 딸린 전망 좋은 집에서 살고 해마다 크루즈를 타고 세계여행을 다니는 세련된 분이었는데 그럼에도 누구도 하대하지 않고 친구처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매너가 좋은 분이었다. 때마다 미용실에 가서 적지 않은 돈을 쓰며 머리를 다듬는 것도 좋아했다. 물론 고집이 좀 세고 수집벽이 있으며 엉뚱하게 절약을 하는 면도 있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가장 저렴한 브랜드의 식료품만 사고 노인 할인을 해주는 맥도널드에서만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빈국의 기아 아동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하는 분이었다. 근 10년 간 매주 교회에서 만난 그녀는 그런 모습이었다.


장례에 참석한 우리는 그녀와 어떻게든 엮여있지만 누구도 그녀의 전 인생을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알지 못하는 삶의 구간과 영역이 있다. 우리는 모두 그녀에 관한 몇 개의 퍼즐 조각을 들고 장례식에 왔고 서로의 조각을 조금씩 꿰어보다가 맞추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 그녀의 삶을 제 마음대로 해석하는 건 아닐까?


나는 나의 추도사에 어떤 사람으로 등장을 할까?

3. 공동묘지는 마을 한가운데

장례 예배를 마치고, 그녀의 관을 실은 영구차는 백파이프 연주자를 따라 마지막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우리는 길을 건너 공동묘지로 향했다. 마을 한복판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묘지는 심지어 초등학교와 낮은 담을 나누고 있다. 멜번 시내 한복판에도 거대한 공동묘지가 멜번 대학과 맞붙어 있다. 동네마다 중심엔 그 동네 사람들이 죽어서 묻힐 공동묘지가 흔하게 있어 생일이나 기념일이면 유족들이 정원에서 꺾은 꽃들을 놓고 가기도 하고 어린 손자들이 하굣길에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장으로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여 묘지조차도 삶의 현장으로 존재한다.

나도 묘지 걷는 걸 좋아한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산책하며 묘비명을 읽는다. 그 밑에 누운 자의 삶을 그리다 보면 내 코로 들어오는 숨에 감사하게 되고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여기며 오만하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한다.


4. 묘자리는 어디에?

J는 전남편의 묘지에 함께 묻혔다. 이 분은 사실 재혼 커플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할아버지와 20년 넘는 세월을 동거한 것이었다. 이곳 정서상 동거도 결혼과 비등하게 본다고도 하지만... 그 둘이 서로 배우자를 잃고 늦은 나이에 만나 애틋한 감정을 나누며 황혼의 시간을 외롭지 않게 잘 보냈고 장성했던 각자의 자녀들도 그들의 만남을 너무 축복했지만 결국 유족들은 앞으로의 묘지관리에 더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도 황당하고 기이했는데, 몇 번의 케이스를 보고 나니 유족들이 이리저리 다니며 복잡하게 추모하느니 각자의 부모를 한자리에서 잘 모시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사자들도 자식들 불편하지 않게 하자며 미리 묘자리에 대한 합의를 해 놓는다. 이혼 재혼이 흔해 가족 관계가 복잡해지고 수명도 길어지다 보니 이런 문제들도 고민해 볼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장례를 마치고 J의 어린 증손자는 관 위에 있던 장미를 손님들에게 한 송이씩 나누어 주었다. 식탁 위의 분홍 장미를 볼 때마다 꼿꼿하고 우아했던 그녀를 잠시 떠올리며 하늘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소렌토 뒷바다로 산책을 나갔다. 바닷가 절벽에 자리 잡은 뷰 좋은 카페에서 누군가가 결혼을 하고 있었다. 산 사람은 또 산 사람대로 축복받으며 인생의 새 장을 열어간다. 이래저래 아름다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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