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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피 Mar 02. 2021

일과 결혼한 여자 상사 vs 가정이 있는 여자 상사

누가 더 독한가요

페미니즘이 만연한 시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세대 어머니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안쓰럽다 못해 도대체 왜 그러고 사셨는지 이해가 안 될 지경이니까. 그런 어머니들 밑에서 ‘너는 그러지 마라'라고 배웠기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가. 여자가 성공을 하려면 그러지 말아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기본적으로 결혼, 그리고 출산이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맞는 말 같다.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 선배님들 중에는 출산한 여성이 없거든. 심지어 40대를 넘어가는 여자 아트디렉터를 보기가 힘들다. 대학시절에만 해도, 디자인 전공은 여자가 대부분이었는데 말이야. 그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물론 일 대신 가정을 선택한다는 것이, 또 다른 종류의 성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보다 아주 못하던 동기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아직까지 광고계에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밤마다 분에 못 이겨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데.




내 이전 팀장님은 정말 멋진 여자였다. 독신 여자 상사에게 항상 연관 지어 따라다니는 '히스테리'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성별로 구분 짓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고 성공한 사람이었다. 대행사 PPM을 하는 날이면 우리 팀장님을 제외하고는 감독님을 비롯해 대부분이 남자였는데 그들 중심에서 팀장님이 리드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소름 끼치게 멋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팀장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독한 여자가 되기로.


꿈을 이루는 데 있어서 내 롤모델과 내 지향점이, 성공한 광고인이 아니라 성공한 여. 자. 광고인이라는 게 씁쓸하기도 하다. 내가 성공하기에는 아직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챌린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라서. 주 52시간 제도는 상상 속에도 없던 그 시절에, 사무실 안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남자들과 함께 철야하던 우리 팀장님은 어떤 마음으로 사원의 나날을 보냈을까? 주방에서 여성 모델이 '여자라서 행복해요'와 같은 대사를 하고, 또 그것이 대유행이 되던 시절에 그녀는 여성 카피라이터로써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에게 광고는 어떤 존재였으며, 무엇이 그녀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것인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대단하다.




그리고 이제 이 시대의 내가 그녀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나는 이 시대에 맞는 성공한 여자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일들을 해냈는데 그게 바로 결혼과 출산이다. 소위 말하는 요즘의 비혼 여성에게는 인생 실패의 지름길일 테지. 하지만 난 바통을 넘겨줄 다음 세대의 후배에게 보여주고 싶다. 거부하는 방법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정면승부를 하는 것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과 출산이란 행위가 내 커리어에 어떠한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솔직히 얼마나 독해져야 모든 방면에서 성공한 여자가 될 수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먼저 내 딸한테는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내 딸에게는 독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으니까.


시대의 덕도 있는 게 무려 광고대행사에서 주 52시간 제도를 적용하려고 노력 중이고 여러 가지 정부 방안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여러 회사에서도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복지가 생겨나고 있는 추세고. 하지만 나는 여기에 또 의문을 가진다. 왜 여자는 제도와 복지가 있어야만 일과 출산을 병행할 수 있는가. 예전에 복지가 단 하나도 없던 시절에도 남자들은 다 결혼도 하고 애도 셋이나 낳았는데 말이다.




나는 가끔 육아가 싫어서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남자 상사들을 볼 테면 그런 생각이 들어.



아, 그들의 인생도 성공한 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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