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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 후기 및 일상

by 카레맛곰돌이

이미 끝난 전시전의 후기를 쓰는 것도 조금 늦다 싶기는 하지만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을 다녀왔습니다. 디자인 수업이 끝날 때 같이 수업을 들으신 분께서 시간에 쫓겨 가보지 못하다가 주말에 가볼 예정이라고 말씀하신 걸 듣고 저도 관심이 생겼거든요. 무엇보다 알폰스 무하의 원화전, 국내에서 미디어 아트나 일반 전시전이 열렸던 사례는 많았어도 이렇게 규모 있는 원화전은 거진 5년 만이었던 거로 알고 있어서 찾아본 후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는 알폰스 무하 원화전과 지난주에 있었던 일상들, 그리고 이번 주에 있을 예정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들을 섞어서 담아보려고 합니다. 늘 이렇게 글을 쓸 때면 제 족적을 남기는 것 같네요. 전시전에 가본 이야기를 담고, 전시회에 가본 이야기를 담고, 다양한 행사와 장소에 갔던 이야기를 담고...




1.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 후기



알폰스 무하 원화전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상 전시전이 끝나기 직전에 방문했는데요. 저도 원래 주말에 방문할까 하다가 평일에 도슨트가 있다고 하길래 굳이 사람이 많은 주말보다는 평일 도슨트를 들으며 전시를 보는 게 낫지 않겠나 싶어 평일에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방문한 시간은 오후 4시로 마지막 도슨트가 있는 시간대였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인원이 도슨트를 듣기 위해 모였더라고요. 전시 끝물이라 인원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인기가 많은 전시답게 재방문하는 인원, 전시 마무리 직전에 듣기 위해 찾아오는 인원, 다양한 이들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전시 후기에 앞서 알폰스 무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 알폰스 무하의 작품은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작가로 다른 대표 작가로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무하가 태어나고 작품활동을 시작한 1800년도 중, 후반은 신고전주의, 그러니까 아카데미즘이 한창 득세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나 유럽, 프랑스에서 그림 좀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면 모두 이런 화풍의 그림을 그렸죠. 그리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낭만주의, 인상파의 대두 또한 그가 활동했던 시기에 있었다는 걸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카메라의 등장, 사실주의 혁명에 대항하기 위한 화가들의 끝없는 사투가 담겨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하는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워왔음에도 정규 예술원을 나오지 못했고, 정확히 말하면 떨어졌습니다. 추후에 우연히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마저 날려버렸고 돈을 벌기 위해 상업예술의 길로 빠졌죠. 만약 그때 후원가의 후원을 받으면서 정규 교육을 받았다면 그는 아카데미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가가 되었을까요? 그것도 재미있는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는 이후 잡지 삽화, 무대장치 디자인과 같은 다양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후에 한 번 더, 사라 베르나르라는 당대 최고 여배우의 포스터를 그리며 일러스트 계의 일약 스타로 자리 잡게 됩니다. 과연 그는 이후에 어떤 작품을 남겼을까요?



제가 처음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책의 삽화였습니다. 책의 장정만 봐서는 근래에 나온 책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굉장히 세련되었어요. 특히나 이런 스타일의 삽화가 그려진 책들이 크고 작은 북페어에서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런 책을 직접 만들어서 가져오시는 편집자님들은 보통 어느 정도 경력이 있고 디자인적 감성이 있으신 편집자님들이십니다. 평범한 고전소설을 묶어와서는 민음사와 같은 대형 출판사에서 나오는 문학 전집과 대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아시기에 이런 삽화에 양장본, 금색 추가 작업까지 들어간 시각적 만족도가 높은 책을 가져오시는 거죠. 만약 이 책이 지금 출판시장에 나온다면 사람들이 살까요? 저는 가격이 너무 비싸지만 않다면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요가 있으리라 봅니다. 무엇보다 예쁘잖아요?


이 책은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기 전, 예술원에서 자퇴한 후에 잡지사와 책의 삽화를 그리던 시절 그렸던 작품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지만 아직 일약 스타가 되기는 전의 작품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굵은 외곽선과 아낌없이 사용되는 금색, 그리고 화려한 색의 활용이 눈에 띄는데요. 이 책을 제외하고도 여러 책 삽화 작품이 있었지만 저는 가장 먼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네요.



이번 작품은 프랑스의 샴페인 회사, 굉장히 대중적인 브랜드로 유명한 모엣&샹동의 패키지 디자인 삽화입니다. 위 책 일러스트 삽화 시기와 모엣&샹동의 패키지 디자인 삽화 시기 사이에는 사라 베르나르와 함께하며 포스터를 그리던 시기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저는 많은 수많은 포스터들도 마음에 들었지만 유달리 모엣&샹동의 패키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무엇보다 모엣&샹동, F1 포디움 세레머니에서 쓰이는 샴페인을 공급하다 자사 브랜딩을 위해 철수했는데 올해 다시 샴페인 공급 회사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다음 벨기에 그랑프리의 앞에 붙는 스폰서 타이틀명이 모엣&샹동 벨기에 그랑프리입니다. 최근에 영국 GP가 끝난 후 다음 스파-프랑코샹에 대한 생각이 많이 있었다 보니 우연히 모엣&샹동이 눈에 들어왔네요.



알폰스 무하의 작품, 들었을 때 적지 않은 이들이 떠올리는 '황도 12궁'과 상업 예술 포스터 중 제 마음에 들었던 '젤레 프레르/실바니스 에센스' 향수 광고 포스터입니다. 무하 원화전에 방문하기 전에 예체능을 전공한 지인과 이 전시전을 간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지인이 제게 이런 말을 했네요. "타로카드 구경하러 가요?"


아마 많은 이들이 '황도 12궁', 그 외 다른 작품들을 보고 타로카드를 떠올리셨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무하는 타로카드의 삽화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1900년도 초반, 현재까지도 가장 유명한 타로카드이자 모든 타로카드 일러스트 디자인의 기초로 알려져 있는 라이더-웨이트-스미스는 파멜라 콜먼 스미스라는 화가의 삽화가 들어간 타로카드입니다. 이 카드에 그려진 삽화는 무하의 스타일, 유려한 곡선과 화려한 색상 배치, 다양한 장식품의 배치를 통해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는데요.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도 이런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배치되었습니다. 도슨트님께서 작품 도슨트 도중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무하 원화전을 보면 대다수의 관람객분들이 여성분들이세요. 작품이 굉장히 감성적이고 화려해서 여성분들이 좋아하시거든요." 실제로 관람객의 대다수는 여성분들이셨네요.


저는 이 작품들을 지나치면서 우연히 보드게임 중 '아줄'이라는 보드게임을 떠올렸어요. '아줄'은 포르투갈에서 유행했던 도자기, 타일 양식인 아줄레주를 베이스로 해 기획한 보드게임인데요. 다양한 타일을 자신의 테이블에 순서대로 배치하면서 이 타일의 배치에 따른 점수를 얻고, 얼마나 예술적인 문양을 만드냐로 대결을 하는 그런 게임이었습니다. 시대상과 디자인이 아르누보, 무하와 완전히 맞지는 않지만 무하의 작품 배경에 늘상 깔리는 원형의 타일 형상 장식품 배치를 볼 때면 무의식적으로 이 게임을 자꾸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다른 작품들은 다루지 않더라도 이 그림만큼은 이야기하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무하가 디자인과 관련된 책을 냈을 당시에 들어갔던 삽화라고 합니다. 당시 그는 너무 많은 관심을 받는, 그러니까 초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였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림 오퍼 또한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받게 되었죠. 그래서 그는 책을 통해 이렇게 따라 그리면 된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물론 이 책을 본 이들은? 더욱이 무하의 그림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일감만 더 늘어나는 악의 굴레에 빠지게 된 거죠.


저는 맨 처음에 이 작품을 봤을 때 식기를 실제로 붙여놓은 것은 아닌지,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작품은 아닌지 멀리서 봤을 때 굉장히 놀랐고 가까이 다가가서 집중해 본 기억이 납니다. 단순한 음영 배치만으로 그는 디테일한 사물의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었고 디테일한 그림도 완벽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었죠. 위에서 이 시기는 사실주의, 그러니까 카메라에 대항하는 화가들의 삶이 겹치는 구간이라고 짤막하게 다뤘습니다. 그는 카메라의 등장에 대해 이런 그림들을 통해 답했습니다. 아름다운 일러스트뿐 아니라 완벽하게 사실적인 그림도 그릴 수 있다고 말이죠. 어떤 그림보다 이 그림이 들어간 디자인집은 당대 화가들이 마주한 현실에 대한 무하의 답변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드네요.



이후 무하의 종교적 신념, 주님의 기도를 담은 기도서 일러스트집과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 슬라브 민족을 위한 민족주의적 삽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있었지만 여기에서 다루자니 끝이 없네요. 이번 원화전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저 멀리 서울까지 찾아갈 보람이 있었어요. 그리고 도슨트 시간을 억지로 맞춰서 도슨트를 들을 가치도 물론 있었죠. 저는 웬만하면 전시전 도슨트 시간을 맞춰보거나 그도 아니라면 유료 도슨트라도 들으면서 전시전을 관람하려고 합니다. 제 식견이 짧은 탓에 배우면서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끔 도슨트가 가볍게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로 지나치거나 유료 전자 도슨트가 작품 옆에 붙어있는 소개글을 읽어주는 수준인 경우도 있어서 불만스러웠던 때도 있었어요. 그런 때에 비하면 이번 도슨트는 굉장히 풍부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가져온 사진들은 이후 상품으로 판매하는 굿즈였습니다.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지만 일단 한정 도록은 모두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가격대가 45,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조금 아쉬운 느낌의 도록이어서 구매할 일도 없었겠지만요. 저는 늘 전시전에 방문하면 도록의 품질, 레이아웃 배치와 디자인부터 살펴보고는 하는데 이번 도록은 양장에 예쁘게 나오기는 했어도 제 흥미를 끌 정도는 아니었네요.


도록보다 마음에 들었던 상품은 이 유리 액자 포스터, 그리고 발매트였습니다. 발매트는 순수히 제 취향으로 귀여운 멍멍이들이 그려져서 찍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 생각나지 않나요? 마당과 멍멍이, 오색빛의 멍멍이가 가득한 호크니의 세계, 갑자기 생각이 나서 한참이나 멈춰서 보고 있었네요. 그리고 유리 액자의 경우 프린팅 퀄리티부터 촉감, 마감까지 굉장히 퀄리티가 좋았습니다. 만약 이걸 전시할 공간이 집에 있었다면 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요. 다양한 굿즈가 있었지만 저는 이런 대형 인테리어 소품이 미술관의 실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유심히 봤네요.


이렇게 이번 전시전 이야기도 끝입니다. 13일까지 있었던 전시여서 이미 시기는 지났지만 바로 뒤이어 '이탈리아 국립 미술관 셀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전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방문하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이번 전시까지는 관심이 가지 않아서 방문하지 않고, 아마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굿즈와 도록, 이전에 작품 배치와 도슨트까지 훌륭했으니 다음도 믿어볼 만하지 않을까요?




2. 그 외 자잘한 일상과 계획된 일정


수업이 끝난 후에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보고는 있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여전히 없네요. 뭐, 저를 찾아주는 곳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충실히 보내려고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당장 다음 일정은 16일 날 예비군, 그리고 17일 날 보드게임콘이 있네요. 제 절친한 친구가 곧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전에 다양한 보드게임을 맛보고, 또 직장 선후배들과 같이 할만한 재미있는 파티 게임, 둘이서 할만한 게임, 다양한 보드게임을 찾는다고 해서 이번 보드게임콘에 같이 데려가보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그 친구는 파티게임으로 '뱅'을 먼저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딕싯'이나 '시타델', '아임더보스', '라스베가스'와 같은 게임들을 추천해주기는 했습니다만, 4인으로 인원을 줄인다면 솔직히 '윙스팬'이나 '티켓 투 라이드' 시리즈도 좋지 않을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드게임콘에서 볼 수 있을만한 게임이 없긴 하네요. 해봤자 '딕싯' 새로운 디자인 패키지의 제품정도?


제가 이번 보드게임콘에서 기대하는 작품은 '봄버스터즈'라는 작품입니다. 다들 '다빈치 코드' 많이 해보셨나요? 서로 타일을 쫙 나열해 놓고 내 손의 수, 상대 손의 수를 비교하면서 어떤 숫자인지 하나하나 맞춰가는 게임이죠.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 큰 수, 작은 수를 이야기하면서 상대 패를 분석해 가다 중반쯤에 연달아서 탕, 탕, 탕 하고 타일을 풀어가는 재미가 있는 보드게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게임이 만약 팀게임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거에 대한 대답이 '봄버스터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네요.


또 다른 작품은 '라쿠카라차 반딧불이'인데요. '라쿠카라차'는 들어보셨나요? 바퀴벌레 한 마리를 게임 타일 정중앙에 두고 녀석의 주위를 막은 상태로 시작하는 이 게임은 버튼을 켜면 미친 듯이 움직이는 벌레를 자신의 트랩으로 유도하는 게임입니다! 주사위를 굴려 벌레 주면의 벽을 옮기면서 자신 쪽으로 길을 만들어 유도하는 게 게임의 핵심인데요. 이번에는 이 게임이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도록 반딧불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벌레를 새롭게 준비했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 파티게임 그 자체가 되어버렸네요. 참고로 제 친구는 셰프인데 주방에서 날뛰는 바퀴벌레를 잡는 게임이라고 설명을 듣자마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긴 요리사와 바퀴벌레, 끔찍한 조합이기는 하네요.


보드게임콘을 다녀온 후에는 기회가 된다면 뮤지엄 산에 가보려고 합니다. 사실 시기상으로 날이 너무 더워서 이게 맞나 싶기는 한데, 반대로 지금이 아니면 가볼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아서 혼자 차를 끌고 1박 2일 정도의 일정으로 다녀올까 생각 중이에요. 특히나 최근 전시전과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매거진, 가이드북을 구상할 때, 그리고 건축과 관련된 글을 찾아 읽을 때 뮤지엄 산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막 올라왔는데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갈 수 있겠어요. 돈은 없어도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또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이때라도 다녀와야지.


이렇게 모든 일이 끝나면 아마 8월에는 아르바이트가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그전에 넣어뒀던 곳 중 어디든 연락이 오면 좋겠는데... 아무튼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또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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