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녹색 계급이라는 인식
수온이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 시기쯤 되면 으레 나오는 예사말이 되었다. 나는 몇 년간 해마다 바다의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 식탁의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를 서평으로 풀어내고는 했고 이에 대한 대화도 여럿 나누었다. 내가 자라던 때 서민의 식탁을 지키는 물고기라 불렸던 고등어와 꽁치는 어디로 갔을까. 시린 바람이 부는 겨울 바다, 배를 띄우기만 해도 선창을 가득 채울 만큼 잡을 수 있었던 오징어는 어디로 갔을까.
『녹색 계급의 출현』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녹색 계급이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 위치를 지키던 인물들은 늘 있었던 거 같은데?’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대다수의 이들은 생태주의 행보보다는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당장 지난 총선에 힘을 합쳤던 녹색당과 정의당의 구도를 생각해 보면 된다. 노동자의 인권과 리버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던 정의당과 생태주의를 표방하던 녹색당은 접점이 있다기보다는 서로 거리감이 있는 존재들이었지만 진보라는 거대한 틀과 국회의원 배출이라는 정치적 셈법 아래에 뭉쳤고,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이 바라보는 지평선이 무엇인지 설명하지도 못한 채 알맹이 없는 구호만 외치다 침몰했다. 결과적으로 당원들과 당의 중진들이 바라본 하늘은 달랐던 셈이다.
녹색 계급은 단순히 분류하면 보수적 옛 개념, 그러니까 부의 생산과 집중에 몰두하는 옛 세계를 붕괴시키고 그간 사회가 만들어온 기물을 파괴한 다음 자연으로 돌려보내자고 말하는 극단주의적인 성향의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해석은 지금까지 크게 목소리를 내온 이들이 모두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행동을 통해 움직였다는 점에서 나오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모나리자에 수프를 뿌렸던 이들을 뭐라 표현했는지 생각해보라. 에코 테러리즘, 사회에서는 그들을 급진적 환경주의자라고 정의했다. 현 사회에서 생태주의 사상에 대해 가장 목소리 높이는 이들이 바로 급진적 환경주의자들이다. 그러니 생태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이런 이미지만 떠올릴 수밖에.
생태주의자가 되어 자연을 지켜야 한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 이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수많은 주류가 되지 못한 사상을 떠올리고 그들이 사회에게 외면당하며 구석으로 내몰린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의 지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강경한 방안과 더불어 부드럽게 녹아내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있어야 우리는 사회의 구석에서 중심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다. 담론의 장이 있어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급진주의자만이 이 조직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소리 내 증명할 수 있다. 공장을 부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자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생태주의자의 전부가 아니라 전기차를 개발하고 만드는 이들도 생태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게 바로 저자가 이야기했던 구석이 아닌 중심으로 행진하는 길이다.
수온이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바다에 대한 이야기로 끝내보려고 한다. 나는 매년 해수욕장에 나타나는 해파리에 대해, 한국 바다 인근에서 사라져가는 난류성 어종에 대해, 올해 영덕에서 평시의 2배 이상 잡혔지만 전부 폐기하기로 했다는 참치에 대해, 그리고 사라져가는 그린란드의 빙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초대형 빙산이 그린란드의 한 마을 항구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둘리가 빙하타고 내려왔나?’같은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빙하가 급속도로 해빙되어서 빙산 채로 흘러들어왔구나,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다. 첫 차를 구매할 때 내연기관 자동차보다는 그래도 하이브리드가 환경에도, 내 지갑 사정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샀던 사람이다. 이런 나도 녹색 계급에 합류할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큰 행동과 큰 실천이 아니다. 작은 행동과 작은 실천, 그리고 내가 녹색 계급에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이다. 오늘도 나는 저녁상에 오른 고등어를 보며 작년보다 1.5도 이상 오른 수온을 떠올리고 또 언젠가 우리 바다에 고등어가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면 좋겠는데, 상상할 뿐이다.
이번 서평의 주안점은 현실 정치에서 정치적 개념으로, 그리고 더 크게 사상적인 이야기로 펼친 다음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는 서평을 준비했다.
사실 이번 서평도 취업을 위해 제출한 서평 중 하나다. 지난 달에는 취업을 위한 서평을 계속 써왔는데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런 서평이 몇 개씩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이게 10개를 넘기기 전에는 취업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