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송정 해수욕장이 보이는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주도한 건 아니고 친구 하나가 펜션에서 요리하고 먹는 모임이 있는데 이번에 부산에서 할 계획이 있으니 참가하면 좋겠다고 꽤 오랜 기간 설득을 해서 끝내 넘어간 것이었죠.
저는 부산을 좋아합니다. 제 아버지는 언제나 자랑스럽게 부산 이야기를 꺼내고는 했던 부산 사나이였고, 저 또한 부산이 고향인 남자니까요. 거기에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흥얼거릴 만큼 롯데 자이언츠에 목매어 살던 사람들이었고 20대의 사랑 이야기를 부산에서 꽃 피우기도 했으니 여러 의미에서 추억이 깊은 도시인 셈이죠.
그럼에도 사실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까지 많은 결심이 필요했어요. 일단 취업이 잘 되지 않고 있었고, 어디서 일하지도 않는 사람이 밖에 나돌아 다니며 놀아도 될까 하는 스스로를 향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털어내고 결국은 여행길에 올랐어요. 이번 여행은 곧 결혼하는 중학교 동창을 위한 여행이라 생각하면서요.
벌써 17년, 18년간 알고 지낸 제 친구는 내년이면 부산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여자친구분을 거진 10년 넘게 만났으니 이제 슬슬 결혼할 때도 되긴 했죠. 그 친구도 결혼 준비에 점점 분주해지고 있는 눈치예요. 집을 어떻게 할지, 가전제품은 어떻게 마련할지, 결혼식은 열지 않기로 했으니 어떻게 파티를 준비할지. 그런 와중에 저랑의 우정 같은 생각도 했던 모양인 거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운전하는 차로 부산까지 내려가면서 남정네끼리 여행 분위기도 내보고 싶다고요. 아마 결혼하면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게 점점 어려워질 테니.
결국 그런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해주는 수밖에요. 그래서 며칠 전부터 펜션에서 쓸 조리도구와 식자재를 산다고 함께 돌아다니고 준비하다 여행 첫날 새벽부터 부산으로 차를 끌고 내려갔습니다. 솔직히 부산으로 가는 길, 생각보다 너무 멀어서 조금 힘들긴 했어요.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오후 3시 가까이에 도착했으니, 점심 먹고 중간에 쉰 시간을 빼도 거진 6시간은 운전을 한 셈이죠.
뭐, 사실 이 여행은 먹는 여행이라고 했지만 사실 다른 목적도 있긴 했어서 6시간 운전도 감내할 수 있긴 했습니다. 그 다른 목적은 바로 출사! 부산까지 혼자 출사를 나가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런데 기회가 생겼으니 이번에는 부산에서 사진을 찍어야죠.
그렇게 운전해서 첫날, 둘째 날 건진 사진이 이게 전부입니다... 놀랍게도 이게 전부예요. 첫날은 부산 숙소에 바로 간 것도 아니고 재료 손질을 위해 그 친구의 여자친구분 집으로 먼저 이동해서 막상 숙소와 바다에 들르는 시간이 너무 늦었고, 둘째 날은 비가 아침부터 계속 내려서 도저히 찍을 틈이 나지 않더라고요.
첫 사진은 숙소 앞 송정 해수욕장의 바다와 하늘, 두 번째 사진은 숙소 앞을 지나가는 관광열차입니다. 시간마다 관광열차가 천천히 지나가는데 그걸 너무 찍고 싶어서 숙소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열차가 지나가니 조심하라는 벨이 딩딩딩딩 울리면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발코니로 뛰어간 기억밖에 없네요. 제 모습을 보고 다들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열차 소리만 들리면 뛰쳐나가냐면서 웃기도 했죠.
그래서 일단 건진 사진 대신 먹은 음식을 정리하면 첫날에는 꼬치구이(샤슬릭, 닭 안심, 닭다리, 버섯 등...), 라면, 닭 안심 구이, 콘치즈, 폭립까지 다양한 요리들을 구비해서 먹었습니다.
제 동창, 글에서 자주 나오고는 하는데 셰프로 일하고 있는 친구다 보니 이번에 제 차로 식기를 옮길 수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준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준비한 첫날의 요리가 이 정도... 나중에 하는 이야기로는 사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다 준비하지도 못했대요. 지금이 50% 정도의 파워인데 기회가 된다면 풀파워 개방된 요리를 보여주고 싶다나 뭐라나...
그리고 이게 둘째 날의 요리입니다. 첫날은 제가 운전을 너무 많이 해서 엎어져있다 보니 차마 도와달라고 말을 못했는데 둘째 날은 손이 모자란다고 저를 부르더라고요. 사실 그래서 여기 셋팅된 것들은 제가 보조로 만든 것들이기는 합니다. 어제 했던 폭립부터 시작해 다른 불이 필요한 요리들을 하는 동안 제가 뒤에서 감자부터 시작해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놨어요. 그래서 둘이서 만든 결과물이 이정도. 덕분에 배터질 정도로 먹었습니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요리들이 불에 구워진 모습을 찍지 못했다는 거네요. 다들 배가 고파서 자리에 앉자마자 미친듯이 먹었거든요... 도저히 사진을 찍자고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말을 하지 못했어요. 물론 저도 요리를 막 준비했던 후라 배가 고파서 그런 이야기보다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했고요.
마지막 날은 날이 많이 개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데이트를 하는 동안 저 혼자 움직일 자유시간도 생겨났죠. 그래서 송도 해수욕장의 반대편, 죽도공원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왼쪽 사진이 송정 해수욕장의 제일 오른쪽이라면 죽도공원은 정 반대, 가장 왼쪽입니다. 그래서 차를 끌고 20분정도 움직여서 인근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카메라를 꺼내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군산에 북페어를 참가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도 그렇지만 저는 바다에 있는 사람보다 바다에 있는 배, 그것도 어업을 위해 정박해있는 작은 배들을 찍는 걸 좋아했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사람보다 통통배에서는 짙은 소금내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니까요.
부둣가에는 어업에 쓰이는 통통배들이 여럿 있었고, 인근에는 배를 정비하는 어민분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보고 싶었던 바다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휴양지는 아름답지만 일상과 정반대가 되는 장소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났기에 휴양지인 셈이죠. 하지만 같은 조수를 공유하는 바다의 귀퉁이에는 전혀 다른 삶이 담겨 있었습니다. 바로 해가 뜨고 일이 풀리면 바다로 나가는 어민들의 삶이죠.
왠지 모르겠지만 즐거이 웃는 사람들만큼 저는 구석에 쌓여있는 어망과 작은 배들을 찍고 싶었습니다. 사진에서 그런 마음이 느껴지면 좋겠네요.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색은 이런 광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안 도시에는 강이 아닌 바다가 흐르고 있고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닷물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포인트죠. 그래서 카메라를 들면 어딜 봐도 바다와 하늘, 그리고 사람이 함께하는 일상적인 풍경이 찍혀요.
저 멀리 보이는 건물에서 고개를 내밀면 바닷물이 보입니다. 아마 짠내가 올라와서 싫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 짠내야말로 부산의 미워할 수 없는 세일즈 포인트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실제로 짠내나는 도시에서도 살아봤고 흙내나는 도시에서도 살아봤습니다. 물론 매캐한 매연이 나는 도시에서도 살아봤고요. 이런 도시에는 각자의 매력이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도시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도시 바깥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도시 바깥의 삶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담겨 있어요. 비릿한 짠내도, 구수한 흙내도, 모두 매력적이고 모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하나의 풍요인 셈이죠. 저는 기회가 된다면 지방의 도시에서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부산뿐 아니라 서해, 동해, 어디든 바다가 인접한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살던 서산은 나쁜 도시가 아니었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요.
돼지파티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구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저와 합류했고, 저는 그 길로 서울까지 다시 올라갔습니다. 하루가 넘어가기 직전에서야 그를 데려다 준 다음 집에 들어갈 수 있었고 잠시만 자다 깨서 F1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일어나지 못했죠.
월요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같이 놀았던 사람들은 출근하지만 저는 직장을 찾는 일상을 돌아가요. 그래도 마음은 조금 홀가분해졌어요. 사회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를 찾는 일은 어렵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분명 있겠죠. 나를 필요로 하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저도 계속 열심히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에요.
책을 읽고는 싶었지만 여행 일정이 꽤나 타이트해서 결국 가져간 책을 읽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 읽을 책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입니다. 이번 달 내내 읽은 책이 리제로 4부, 5부, 6부여서 책 이야기를 안쓰고 있는데 '부러진 용골'이 괜찮다면 다음에는 책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