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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왜, 우리는)

사람에게 배웠습니다

by 그래도

1. 대학원에서 참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심리상담을 하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도대체 뭘 배우고 졸업한 걸까.”

상담실에서 만난 내담자분들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습니다.

잘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이 오히려 내담자에게 닿는 길을 막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2. 상담이론에는 수없이 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부터 대상관계, 애착, 발달, 인지행동, 가족치료, 인간중심까지.

이론을 배우는 일은 끝이 없습니다.

그때는 그것만 잘 익히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프로이트도 아니었고,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만난 내담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기웃거립니다.

좋은 글이 보이면 찾아 읽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들은 천재였지만, 나는 하루하루를 배우며 살아가는 상담자일 뿐이니까요.

나는 책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고 믿었지만, 상담실에서는 사람과 함께 머무는 법이 필요했습니다.


3.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은 이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 삶을 배운 이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습니다.

그래서 어색했고, 멀어졌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정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사람’으로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왜, 우리는』은 내가 배운 방식과는 반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론에서 삶으로 가는 대신, 삶에서 이론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먼저 ‘사람’을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심리’를 붙이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걸 써보고 싶었습니다.


4. 심리상담을 처음 공부할 때 “왜”라는 질문은 좋지 않았다고 배웠습니다.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문제는 표현이 아니라, 그 질문을 건네는 태도였습니다.

“왜?”라는 말이 추궁이 되면 상처가 되지만, 이해의 마음으로 묻는다면 그건 가장 따뜻한 손길이 됩니다.


5. 90편의 ‘왜’를 쓰면서, 결국 제가 다시 배운 건 ‘답’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이해하려는 태도, 기다리는 태도, 그리고 아직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

제 글이 다루지 못한 수많은 마음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은 덜 외롭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왜’라는 물음이 서로를 향한 따뜻한 대화의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왜, 우리는』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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