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난 홍콩 1

먹고 보고 걸었던 홍콩 여행기

by Cindy

작년 겨울 해외 북페어를 다녀온다는 명목 하에 혼자 떠나본 도쿄여행은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나에겐 떠나는 것에 있어 큰 두려움이 없다. 단기간 집을 떠날 때 필요한 짐을 싸는데엔 이제 선수다. 걸리는 것은 오로지 금전적요소 뿐. 여러가지를 신경쓰며 한껏 정신없고 예민하던 5월 초. 새벽까지 안자고 뭔갈 하다가 문득 여행이 가고싶어져 비행기를 찾아보았다. 직전에 다녀온 일본은 내키지 않았고, 중화권을 가고싶었다. 사진첩이 '1년 전 오늘' 이라고 띄워준 작년의 나는 항저우에서 동파육과 칭다오에 감탄하고 있었으며, 부러워서가 이유라면 이유였다. 대만이냐 홍콩이냐 고민을 하다 항공권이 조금 더 저렴했던 홍콩으로 정했다. (알고보니 습하고 비가 잦은 우기라 저렴한것이었다)


아는 지식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여행이 그만큼 즐겁다. 떠나기 전 이지상 작가의 '도시탐독' 이라는 책을 읽었고, 그가 여행 중 비지스 노래를 들었다는 대목에 꽂혀 나 또한 여행 내내 들었다. (배경지식을 얻어보고자 펼친 책은 그렇게 여행 테마곡 선정에 그쳤다.) 24도쿄 하면 떠오르는 앨범이 맥밀러의 circles 라면 25홍콩은 비지스 how deep is your love, 칼리우치스 after the storm 이 생각날 것 같다.


홍콩까지는 대략 4-5시간 가량.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느리다. 졸다 깨고를 대여섯번 반복,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대신 생각없이 다운받아온 F1을 몰두해서 보다보니 금방 도착했다. 내내 흐리고 비가 올까 우려했던 바와 달리 건조한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타국 공항을 밟음과 동시에 사라지는 수치심과 동시에 생기는 무모함, 그리고 이상한 해방감. 익숙한 간질거림을 느끼면서 수하물을 찾고, 빠르게 심사줄을 스캔 후 눈치껏 입국심사를 마친 뒤, 우리나라 K패스 교통카드 개념의 옥스퍼드카드를 수령하고 시내로 진입하는 2층버스를 타기위해 걸음을 바쁘게 옮겼다. 캐리어를 짐칸에 들여놓고 2층으로 올라가 빈 창가에 털썩 앉으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피로감에 몸이 나른해졌다. 한숨 돌리고 바깥을 보니 쨍쨍한 햇살에 부서지는 섬 바다의 윤슬이 아름다웠다.


물가가 악명이 높다고 듣긴 했지만 직접 체감하니 손이 덜덜 떨리는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끼니를 먹으려면 평균 2-3만원, 여행 왔으니 기분 좀 내볼까 하면 5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식대에 정신이 혼미했다. 심지어 5월에 예약해둔 숙소는 출국 2주 전 확인해보니 치안이 최악이라 외관만 기념사진으로 남긴다는 청킹맨션 건물 내 어느 1인실이었어서, 정신나간 과거의 나를 질책하며 멀쩡한 숙소를 찾는데에 소위 말하는 '멍청비용' 을 지불한 상태였다. 머물지도 않을 숙소에 돈을 쥐어주지만 않았어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며 갖춰진 밥을 먹었을 지도 모른다. 환불이 불가한 옵션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기준을 세웠다. 택시 금지, 한끼 2만원 이상 지출 금지, 디저트 하루 1만원 이상 지출 금지. 단 커피 제외.


버스로 시내에 도착 후, 빠르게 호텔에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구글 맵 리뷰에 '으슥한 건물, 층을 올라가면 다른 풍경' 이라는 번역기 리뷰를 보고 주먹을 꽉 쥔 채 로컬 식당을 찾아갔다. 중국 학교 뒷골목 먹자거리 건물 2층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사람이 더 없고 닫거나 폐업한 가게들이 많은. 안그래도 해가 지면서 구름이 끼고 건조하던 공기가 후덥지근해졌는데, 건물은 내부라서 더욱 습했다. 말없이 쳐다보던 1층 수산물 코너 사람들을 빠르게 지나쳐 에스컬레이터 두번 타고 3층으로 올라가니, 정말 학교에서 맨날 가던 단골식당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옹기종기 앉아서 식사하고있는 홍콩 사람들, 기둥마다 달린 선풍기.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고 손가락으로 1을 만들어보이며 웃자 건조하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더워 죽을것 같았지만 땀으로 샤워한 내 모습은 안보이신다는듯 펄펄 끓는 물을 내어주셨다. 목을 축이고 돼지고기 볶음면을 먹었고, 원화로 1만원이 안되는 금액임에도 한 접시 가득 내어주셨다. 당면같은 납작한 면발에 간장 양념을 한 돼지고기가 맛있었다. 스리라차 소스도 같이 주셨는데 조금 물리나 싶을때 뿌리니 독특하고 잘어울렸다. 밥을 먹는 내내 반대편 아저씨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꾸 시선이 느껴져서 나도 뭐 드시나 테이블을 봤다. 그분들은 와인을 콜키지해서 마시고 계셨다. 한모금 얻어먹고 싶었다.


오후 7시도 안됐는데 가려고 한 곳들이 다 문을 닫은 상태였다. 급하게 근처 커피마실 곳을 실시간으로 검색했고, Brewary 라는 브런치 카페를 발견했다. 슬라이드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니 좁은 매장 안에 사람이 가득 차있었다. 저녁인데 빵 냄새가 강하게 났다. 내가 들어가니 직원이 자리 없다는 말을 꺼내려길래, 테이크아웃이라고 하니 하니 아하! 하면서 안쪽으로 안내해주었다. 평소라면 아메리카노를 시켰겠지만 그날은 라떼가 땡겼다. 저녁을 먹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몇분 서 있자니 내 커피가 나왔다. 평범하게 생긴 라떼를 받아들고 나와 쭉 마셨는데 너무 깔끔해서 깜짝 놀랐다. 특유의 슴슴하고 고소한 맛으로 시작해 텁텁함 하나없는 깔끔한 마무리. 핸드드립 라떼 맛이 났다. 핸드드립이었나? 첫 날 첫 커피가 성공적이라 기분이 좋았다. (여행 중 한번 더 오고싶은곳이었는데 가진 못했다.) 만족스러운 커피를 들고 근처 서점으로 향했다.


7시 30분 마감으로 되어있길래 부랴부랴 찾아갔는데 빙빙 돌아도 입구가 없었다. 2회가량 제자리를 빙빙 돌았을 때 책을 들고있는 여자가 허름한 건물로 들어갔다. 따라가서 "들고있는 책, 여기 건물에서 산거냐" 물어보니 맞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한다고 알려줬다. 같이 타고 2층을 누르길래 서점에서 같이 내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 내리라고 눌러준거였다. 본인은 한층 더 올라갔다.

겨우 달려있는 흰색 형광등, 구색만 갖춰놓은 보라색 현수막에 서점 이름이 적혀있었다. 책들을 가지런히 진열하지 않고 마구 쌓아둔 것이 마치 동묘를 연상케하지만 카테고리별로 서적 분류는 되어있는, 무질서 속 질서가 돋보이는 서점이었다. 사람들이 구경하고 제자리에 놓지 않아 뒤죽박죽으로 꽂혀있거나 얹혀져있는것이 자유롭고 좋았다. 일본도 그렇고 이런 옛날 책방 (서점보다 책방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을 갈 때면 기분이 참 좋다. 커피를 들고 들어갔는데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그래도 만약 엎으면 책을 사야할테니 구석에 멀리 내려놓고 감상했다. 전문 예술 서적이 5일간 봤던 서점 중 제일 많았던 것 같다. 구석엔 카피본으로 보이는 옛날 CD가 쌓아져있었다. 사진 촬영 금지나, 점원의 시선도 없어서 편하게 보고 나왔다.


홍콩의 밤은 중국보다도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강했다. 야경으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명소는 어디든 아름답고 반짝이는 법이다. 수려한 야경은 상하이에서 충분히 만끽했기에 꼭 야경 명소를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사이잉푼, 홍콩섬 서쪽에 위치해있었다. 타인에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은 중국과 비슷한 면이 있었으나 그때와는 미묘하게 공기가 달랐다. 모두가 8시면 영업을 종료했고, 9-10시가 넘어가면 호텔 주변 외에는 거리가 한적해졌다.


환타 하나, 물 하나를 사고 숙소로 돌아와 지역 별 분위기가 다른것에 대해 찾아봤다. 알고보니 여기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어디는 밤에도 불빛이 꺼질 생각이 없고, 어디는 해가 질 무렵이면 커피도 마시기 힘들었던 거다. 밖에서 한껏 늦장을 부리다 자정 무렵에 들어와 조용히 짐을 풀던 항저우와는 달리 홍콩에 머무는 내내 늦어도 9시에는 귀가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고, 일찍 마무리하며 하루를 이르게 시작함에도 얼굴에 바쁨이 쓰여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